자신을 진보라 생각하는 유권자는 줄어든 반면, 중도-보수는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중도-보수층도 사회문제나 대외정책에서는 보수실용적 노선을 지지하되 부동산 문제 등 경제문제에서는 진보적 정책을 갈구하고 있으며, 특히 현재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는 중도층의 절반 가량은 범여권 통합신당이 출범할 경우 지지정당을 바꿀 수도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이 진보적 경제공약을 제시해 중도층의 표심을 잡지 못한다면 정권 탈환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진보 격감, 중도 급증. 중도 절반은 "지지정당 바꿀 수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에 의뢰해 지난달 8~9일 남녀 유권자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8일 발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이념 성향은 '중도'가 36.9%로 가장 많았고, 보수(30.2%), 진보(27.1%) 순이었다.
이를 KSDC가 지난 2002년 대선 직전 같은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진보(41.1%)-중도(32.3%)-보수(26.7%)의 순으로 나타났던 것과 비교할 때 진보가 14%포인트나 급감한 반면 중도와 보수가 늘어났다.
임태희 여의도연구소장은 이날 당사에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은 결과를 발표하며 "1997년 대선 직전 조사에서 '보수(41.5%)'가, 2002년 대선 직전 조사에서 '진보'가 다수였던 것과 비교할 때 이번 조사에서는 '중도 성향'에 가장 높은 분포를 나타내고 있는 점이 한나라당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늘어난 중도성향 유권자들은 진보에서 이동해온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범여권 통합신당'이 창당될 경우 중도층의 31.1%는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했지만 비슷한 비율인 30.2%가 ‘반(反) 한나라당’ 성향을 보일 것으로 조사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범여권 통합신당 출범시 현재 한나라당 지지층의 상당부분이 이탈할 수더 있음을 경고한 것.
임 소장은 특히 차기 정부의 이념 성향을 묻는 질문에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응답이 39.8%로 '보수여야 한다(17.3%)'는 응답보다 2배 이상 많게 나타난 점도 이같은 지지층 이탈 가능성을 보여주는 방증으로 분석했다.
임 소장은 "특히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도 진보적 정부를 선호하는 응답이 36.4%로 가장 많았다"며, 한나라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끌어들일 수 있을 정도로 자기변화를 이룩할 때에만 한나라당 집권이 가능함을 지적했다.
한나라당이 지금 압도적 독주를 하고 있으나, 부동산-양극화 문제 등에서 진보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지지층이 대거 이탈할 수도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연합뉴스
"경제는 진보, 사회문제는 보수"
정책별로는 14개 쟁점 항목 중 과세, 부동산, 재벌개혁 등 경제 분야에서 응답자의 다수가 진보적 성향을 보였던 반면, 사형제나 불법시위 등 사회 분야 및 대외 문제에서는 보수실용적 성향의 답변이 더 많았다.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질문에는 절대 다수인 82.2%가 찬성하고 9.8%만 반대했고, '재벌 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질문에도 67.5%가 찬성하고 반대는 12.4%에 그치는 등 경제현안에 대한 진보적 성향을 나타냈다.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도 '고소득층 증세'와 '재벌개혁'에 대한 찬성 비율이 각각 79.3%와 66.6%에 이르렀다.
'정부가 세금을 더 많이 거두어서라도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늘려야한다'는 항목의 질문에 대해서도 찬성(44.1%)이 반대(38.1%)보다 많았다.
반면 대북·안보정책에서는 실용보수적 성향을 보였다. 유권자들은 '전시작전권 조기환수는 주권국가로서 당연하다'(찬성 43.5%)면서도 '주한미군은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찬성 69.9%)고 답했다.'국가보안법과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각각 28.5%와 32.4%에 머물렀고, '폭력 등 불법시위를 강력하게 진압해야 한다'에도 64.6%가 찬성했다.
응답자들이 꼽은 차기 정부의 최우선과제는 ‘부동산 문제 해결’(26.0%)이 1위였고, 사회양극화 해소(15.2%), 실업문제 해결(14.7%), 사회안정 질서확립(13.3%), 교육제도 개선(12.6%) 등이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