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현지시간) H조 스페인은 튀니지를 3-1로 꺾고 여유있게 16강 토너먼트 진출권을 확보했다. 예선 첫 경기서 스페인에 완패했던 같은 H조의 우크라이나도 ‘득점기계’ 셰브첸코의 부활에 힘입어 사우나아라비아에 ‘골 폭격’을 퍼부으며 4-0으로 승리, 16강 진출이 유력해졌다.
개막전 징크스로 애를 먹지 않을까 내심 우려하던 독일은 개막전에서 코스타리카에 화끈한 골세례를 퍼부으며 이미 16강 진출을 확정했고, ‘죽음의 조’로 불리던 C조 예선에선 그 중 강호로 꼽히던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가 역시 탄탄한 전력을 뽐내며 일찌감치 결선 토너먼트 진출티켓을 따냈다.
32개팀이 참가한 2006 독일월드컵 조별예선이 이제 막바지도 치닫고 있는 가운데 강호로 분류되는 팀들은 어김없이 16강 진출에 성공했거나 16강 진출이 유력한 반면 축구의 변방이랄 수 있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축구는 돌풍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2006 독일월드컵의 가장 큰 특징은 ‘이변 없는 월드컵’ 이라는 것이다.
월드컵을 보는 또 다른 재미 ‘이변’
세계 축구팬들이 월드컵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을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월드컵이라는 국가대항전을 통해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과 이들이 펼쳐내는 세계퇴고수준의 축구,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들이 축구강국을 상대로 벌이는 의외성 넘치는 승부도 월드컵이 주는 즐거움 중 큰 부분이다.
일례로 1966년 북한이 박두익의 결승골을 앞세워 당시에도 세계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이탈리아를 꺾고 월드컵 8강에 오른 이후, 에우제비오가 버티고 있던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도 비록 역전패하기는 했으나 경기초반 3-0 까지 앞서나가며 승리 일보직전 까지 갔던 일 등 당시 북한의 돌풍이 1966 영국 월드컵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가까운 예로,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의 4강 진출이 가장 큰 이변이었다면 개막전에서 프랑스를 격파하고 8강에 진출했던 세네갈의 돌풍도 빼 놓을 수 없는 이야기 거리로 지금까지도 그 때의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스포츠이건 마찬가지겠지만 약체로 평가되던 팀의 의외의 선전과 그들이 일으키는 돌풍은 스포츠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곤 한다.
이번 월드컵은 스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이변없는 월드컵'으로 평가되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아-아프리카 축구, 가나와 한국을 제외하고 모두 예선탈락 위기
그러나 이번 독일월드컵에서는 그런 돌풍을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키던 아프리카의 팀들도 이번 독일월드컵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17일 체코를 2-0으로 꺾은 가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아프리카 국가인 앙골라, 토고, 코트디부아르 등 이번 독일월드컵을 통해 처음 세계축구팬들에게 선을 보인 아프리카 국가의 팀들은 일찌감치 고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할 처지가 되었거나 그럴 위기에 봉착해 있고, 북중미대표로 이번 독일월드컵에 처음 참가한 트리니다드토바고도 참가에 의미를 두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아시아국가들 역시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지코 재팬’ 일본은 브라질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1무 1패로 가능성 면에서 사실상 예선 탈락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중동의 강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도 각자 속한 조에서 모두 탈락이 유력시 되고 있다. 한국만이 아직까지 무패의 전적으로 16강 진출을 노리고 있지만 마지막 예선경기인 스위스를 잡아야 자력으로 16강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2006 독일월드컵에서 발생한 최대 이변이랄 수 있는 경기는 가나가 체코를 꺾은일과 지난 18일 한국이 프랑스와 1-1 로 비긴 것이 전부랄 수 있다. 조금 더 보태자면 스웨덴이 B조예선 첫 경기에서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트리니다드토바고와 득점 없이 비긴 경기와 지난 16일 멕시코가 D조 예선경기에서 앙골라와 역시 득점 없이 비긴 경기까지 이변이라면 이변으로 부를 수 있는 경기였다.
스타플레이어들 월드컵 참가 이동거리 짧아지고 휴식시간 충분 원인
그렇다면 이번 독일월드컵에서 이렇다 할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다양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많은 축구전문가들은 이번 월드컵이 유럽에서 개최되는 점과 지난 2002년 월드컵보다 일주일 가량 늦게 시작한 점을 지적한다.
세계적 스타플레이어들이 대부분 활약하고 있는 유럽에서 월드컵이 개최됨으로써 그들이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해야하는 거리가 줄어든 점과, 일주일 가량 늦게 월드컵 개막이 이루어지다보니 UEFA 챔피언스리그 등 유럽의 주요 대회일정이 종료한 이후에도 선수들이 나름대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 스타플레이어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유럽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아시아 또는 아프리카의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긴 이동거리와 음식문제 등 적응해야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른 전문가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대다수 대표팀 지도자들이 유럽 출신으로, 이들이 접목한 유럽식 축구가 2002년 히딩크감독이 이끈 한국축구처럼 '성공적 토종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까닭에 유럽 본무대에 와서 고전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하고 있기도 하다. 유럽 본토에 와 유럽식 축구를 하니,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2002년 한-일 월드컵때 아시아-아프리카 신흥세에 워낙 고전한 만큼 이번에는 유럽 대표팀들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경기에 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하며, 독일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까닭에 '유럽 프리미엄'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냐는 분석도 하고 있다.
원인이 어디있던 간에 이번 독일월드컵은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와 무명선수들이 펼치는 의외의 승부를 보는 재미는 크게 줄어들었으나, 반면에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이 펼치는 세계최고 수준의 축구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둘 수 있는 대회로 기억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