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0일 국회 경제정책포럼 초청 조찬세미나에 참석해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과 이틀 전인 28일만 해도 현 부총리는 "기업 투자 부진의 원인이 경기적·구조적 요인뿐 아니라 불합리한 규제에도 있다"며 "이번 기회에 털고 갈 것은 다 털고 가자는 취지로 규제를 대폭 풀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 "수도권 규제를 풀겠다"고 부연설명했다.
실제로 정부는 30일 국무회의에 수도권 자연보전권역에 4년제 대학 이전을 허용하고 과밀억제권역인 인천 영종도 내 일부 지역을 성장관리권역으로 환원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령 개정안'을 상정해 통과시킬 예정이었다.
더 나아가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는 다음달 1일 무역투자진흥회의를 갖고 대기업과 관련된 수도권 입지 규제를 해제하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여기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두차례나 극찬한 현대차그룹의 숙원인 서울 성수동 110층짜리 사옥 허용도 포함돼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박 대통령이 지난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규제를 확 풀어 투자가 많이 돼야 일자리가 생긴다"며 "찔끔찔끔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며 대대적 규제해제를 지시한 직후 일어난 일련의 드라이브다. 마치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때 '줄푸세'를 주장하던 박근혜 후보가 부활한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벌집을 잘못 건드렸다. 수도권 규제완화는 '친기업'을 표방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밀어붙이다가 지방의 거센 반발로 접어야 했던 벌집, 그중에서도 말벌집이었다.
지방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영남·호남 구분이 없었고 보수·진보 구분도 없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일제히 박근혜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29~30일 쏟아져나온 지방지 사설들의 제목만 봐도 얼마나 반발이 거센지 감지할 수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 지방 죽이기 아닌가'(부산일보) '박근혜정부도 결국 수도권 규제 완화책 펴나'(국제신문) '기업 투자 촉진책이 고작 수도권 규제 완화인가'(매일신문) '수도권 규제 완화, 지방 고사시키기 시작이다'(경북일보) '투자 빌미 수도권 규제완화 가당치 않다'(영남일보) '지방 숨통 죽이는 수도권 규제완화 안될 말'(대전일보) '지방 죽이는 수도권 규제완화 안된다'(광주일보)
지방시민단체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균형발전지방분권 전국연대는 29일 성명을 통해 "박근혜정부가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 촉진을 위한 종합계획과 구체적인 이행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해 적극적으로 추진할 때까지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대정부투쟁을 선언했다.
비(非)수도권 시·도지사 및 국회의원 모임인 ‘지역균형발전협의체’도 같은 날 건의문을 통해 “비수도권 지자체와 환경부의 반대에도 수도권정비 계획법 시행령 개정을 강행하는 것은 새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추진 의지를 의심하게 한다”며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추진한 수도권 내 각종 규제 완화로 지방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 출발 두달 만에 지난 정부의 수도권 편향 정책을 맹목적으로 답습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30일 국무회의에 올리려던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령 개정안' 상정을 잠정보류하겠다고 밝히면서 긴급진화에 나서야 했다. 이렇게 이틀만에 '없던 일'로 할 것 같으면 뭣하러 벌집을 건드렸는지 황당할 뿐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재벌들의 오랜 숙원이다. 최근 박 대통령이 경제위기를 이유로 '친기업'으로 급선회하자, 경제관료들이 캐비넷 속에 넣어두었던 이 카드를 서둘러 꺼내들었고 박근혜 정부가 이를 밀어붙이려 하다가 급제동이 걸린 양상이다. 전형적인 '철학의 부재'이자, '관료의존형 통치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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