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朴대통령, MBC노조에 두차례나 약속하고 깼다"
"MB-박근혜 9월 회동서 MBC문제 논의됐을 것"
당시 박근혜 의원의 ‘메신저’ 구실을 한 이상돈 명예교수가 <시사IN> 최신호에 ‘박 대통령의 약속 파기가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박 대통령이 두 차례에 걸쳐 MBC 파업을 해결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4일 <시사IN>에 따르면, 2012년 6월20일 이상돈 교수는 박근혜 의원과 직접 대화를 나눈다. 이 교수는 박 의원에게 “가장 유력한 여당 대선 주자로서 공영방송 파업을 수습해야 하지 않겠느냐. MBC 노조도 김재철 해임을 약속하면 파업을 접을 수 있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이미 MBC 노조 측의 핵심 인물들과는 교감을 이룬 상태였다.
이에 박 의원은 굉장히 ‘포지티브’하게 “당장 그렇게 하세요”라고 답했다.
박 의원은 이상돈 교수를 통해 “MBC 노조 주장에 공감하는 점이 있다. 노조가 먼저 파업을 풀고 당면한 올림픽 방송 준비에 매진하고, 모든 프로그램의 정상화에 돌입한다면 매우 바람직하다. 복귀하고 나면 모든 문제는 순리대로 풀려야겠다”라는 메시지를 노조 쪽에 보낸다. 첫 번째 약속이었다.
이틀 뒤인 6월22일 이번에는 ‘공개 발언’이 나온다. 서울 노원구 복지관에서 배식봉사를 마친 박근혜 의원은 “MBC 파업이 징계 사태까지 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밝혔다. 박 의원이 MBC 파업 사태를 처음 언급했다는 점에서, 당시 이 발언은 크게 기사화되었다.
그런데 이 발언은 박 의원의 단독 플레이가 아니었다. 당시 이상돈 교수로부터 박 의원의 첫 번째 메시지를 전달받은 MBC 노조 측에서 ‘신뢰의 표시’로 박 의원의 ‘공개 발언’을 요구했다. 공개 발언의 문구까지 세세하게 전달했고, 박 의원이 이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증언이다.
당시 MBC 기자협회장으로서 이상돈 교수와 꾸준히 접촉했던 박성호 기자(해직)는 “박 의원의 복지관 발언을 보며 우리 메시지가 잘 전달되고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복지관 발언 직후 박근혜 의원은 이상돈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그런 발언을 했으니 파업을 풀도록 하라”고까지 말했다. 박 의원은 “노조가 명분을 걸고 (회사로) 들어오면 나중 일은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약속이었다.
이후 이 교수의 행보가 바빠졌다. 6월25일 평화방송 인터뷰에서 ‘폭탄 발언’을 내놓는다. “박근혜 의원의 복지관 발언은 김재철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나타낸 것” “새로운 이사진이 김재철 문제 해결할 것” 따위의 ‘암시’가 담긴 발언을 쏟아냈다. 인터뷰 후에 유승민·남경필 의원이 이상돈 교수에게 “혹시 박근혜 의원의 뜻이냐?”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이 무렵 몇몇 MBC 기자들이 야당 원내대표인 박지원 의원을 만나 “청문회나 국정조사보다 국회를 열어서 MBC 문제를 다뤄주길 원한다”라는 뜻을 전한다. 그리고 6월28일 국회 개원 협상이 전격 타결된다. 민간인 사찰과 내곡동 문제는 각각 국정조사와 특검을 진행하되, 김재철 사장 문제는 해당 상임위에서 다루기로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국회 개원 협상이 타결된 지 12일 뒤인 7월10일 박근혜 의원은 ‘홀가분하게’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7월17일에는 MBC 노조가 파업 중단을 결정한다. 노조는 파업 중단을 결정하게 된 이유로 “여야 합의를 통해 김재철 사장의 퇴진이 기정사실화했다”라는 점을 들었다. ‘박근혜의 약속’은 노조 집행부 등 소수만 아는 기밀 사항이었다.
일이 꼬이기 시작한 건 방문진 이사가 새로 구성된 뒤부터다. 7월27일 방문진 여당 몫 이사로 김충일 언론중재위원, 김용철 전 MBC 부사장,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가 선임됐다. 이상돈 교수가 직간접으로 추천한 방송인 이 아무개씨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교수는 박근혜 후보가 김재철 사장 해임 문제에 대해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9월이 되면서 박근혜 캠프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혁당, 정수장학회 문제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후보 지지율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선 캠프 부위원장이던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 후보를 제외한 당 지도부와 당직자 전원 사퇴를 요구했다. 이로 인해 최경환 후보 비서실장이 퇴진하는 등 캠프가 와해 직전까지 갔다.
이상돈 교수는 “당시 유승민 의원이 정조준했던 쪽은 최경환 비서실장뿐만 아니라 안봉근·이재만·이춘상·정호성 등 ‘문고리 4인방’이었다. 이때부터 유승민 의원과 박근혜 후보 사이에 갈등이 점화됐다. 최근 유승민 사태의 전주곡이었다”라고 해석했다.
갈등이 확산되면서 MBC 사태는 완전히 캠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상돈 교수는 “이 무렵부터 이 사람은 당선이 되어도 내가 생각하는 정부를 만들지는 않겠구나, 나와 김종인 등은 이 정권과 관계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변곡점이 있었다. 9월2일 대선 100일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MB)과 박근혜 후보가 100분 동안 비공개로 만났다. 당시 언론에 알려진 내용은 의례적인 것들뿐이었다. 이상돈 교수는 이 만남에서 4대강 문제와 함께 김재철 사장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한다.
10월25일 김재철 사장 해임안이 방문진 이사회에서 부결된 것도 결국 박근혜 후보와 MB 정권의 ‘합작품’이라는 게 중론이다. 당시 양문석 방송통신위원은 “이사회 이틀 전 하금열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무성 대선 총괄본부장이 김충일 이사에게 ‘김재철 스테이’를 요구하는 전화를 걸어왔다”라고 폭로했다.
김재철 사장 해임안이 부결되자 11월14일 MBC 노조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후보가 약속을 파기했다고 폭로한다. 박 후보가 이 교수를 통해 전한 메시지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이 교수는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노조에 박 후보 메시지를 전달한 건 맞지만, 김재철 사장 퇴진을 직접 명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랬던 이 교수가 이번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이 사실이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이 교수는 "2012년 11월14일 노조가 약속 파기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기 직전 대선 캠프 고위 관계자에게 스토리를 이야기해줬더니 그게 사실이냐고 되묻더라. 그다음 날 그 고위 관계자가 나더러 ‘독박’을 쓰라고 했다. (박 대통령과 상관없이) 내가 단독으로 한 행동이라고 둘러대라는 것이다. 그 뒤로는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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