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강금실-오세훈 '이미지 전쟁'의 상흔

<취재수첩> 어차피 이번 싸움은 '노무현-한나라 싸움'이었는데...

"강금실 후보가 서울역 광장에 도착하자 노숙자들이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강 후보는 전혀 망설임 없이 일일이 악수를 나눴으며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강 후보는 일행들과 즉석에서 노숙자 문제의 심각성과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논의했다."

지난 29일 열린우리당이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의 72시간 마라톤 유세 현장을 담은 보도자료를 각 언론에 이메일로 보냈다. 이메일 내용만 보면 대역전의 기적과 이변을 만들겠다는 강 후보 측의 서민과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물씬 묻어난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서 동행 취재 중이던 기자에게 목격된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있었다. 29일 월요일 새벽 0시경 썰렁한 서울역 광장에 강 후보를 비롯해 선거 참모진과 의원 등 20여명이 나타났다.

노숙자와의 대화란 한 노숙자가 손을 내밀자 주춤거리며 별 말 없이 손을 한번 잡은 것이 전부. 경호를 위해 출동한 남대문 경찰서 소속 경찰들은 '박근혜 테러'의 반작용인듯 강 후보 앞에서 노숙자들의 접근을 제지하기에 바빴다. 거리에 누어있던 일부 노숙자들은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역사 안에선 노숙자가 접근하자 떠밀기까지 했다. 길을 막지 말라는 뜻이었다. 역사를 빠져나온 이들의 뒤에 서서 한 노숙자는 "배가 고파요" "내가 배가 고프단 말이야" 라고 소리를 질렀다. "저 사람들 뭐 하러 여기 왔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앞서 강 후보는 한때 자신의 선거사무실을 점거했다가 경찰에 강제해산된 KTX 여승무원들의 역사앞 '천막 없는 농성장'을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쳤다. 1미터 가량의 피켓으로 울타리를 친 농성장 안에선 두 세 명이 이쪽을 빤히 쳐다봤다.

강금실 후보는 시장 후보 출마선언 당시 첫 일성으로 "아름다운 정치"를 약속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기존 정치인과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정치권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오세훈 후보가 출현하면서 '오세훈 바람'이 강타하자 정가의 내로라하는 선거전략 전문가들을 영입했고, 이들은 선거전략을 수정해 네거티브 운동을 서슴치 않았다. 민주노동당 등이 "강금실마저 정치권에 들어오더니 변했다"고 비난했을 정도다.

이같은 비판에서는 오세훈 후보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도 강 후보와 함께 이번 선거를 정책이 실종된 이미지 정치판으로 도배하는 데 톡톡히 한 몫했기 때문이다. 특히 강 후보가 '72시간 마라톤 유세'를 선언하자, 즉각 '철인 3종 릴레이'로 맞대응한 대목은 이미지 정치의 압권이었다. "그렇게 앞서고 있으면서도 강금실이 신경 쓰이긴 쓰이나 보다"는 냉소적 반응이 많았다.

선거전문가들은 말한다.

"어차피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강금실 대 오세훈 싸움'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대 한나라당 싸움'이다. 한나라당에서 오세훈이 아닌 맹형규나 홍준표가 나왔어도 강금실은 졌을 것이다. 서울시에서 한나라당이 이긴다면 그것은 강금실이 진 게 아니라, 노무현이 진 것이다."

어찌 보면 강금실 후보는 이같은 선거 역학의 '희생자'다. 오세훈 후보는 '어부지리 승자'다. 따라서 이들이 어떤 선거운동을 했던 간에 승패에는 영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만큼 더욱 아쉬운 것은 두 사람 모두 냉철한 전문법조인 출신답게 '감성'보다는 '이성'에 충실한 명승부를 보여줬었으면 하는 만시지탄이다. 그랬다면 '노무현 정부심판' 질풍노도가 사그라든 훗날, 두 사람 모두 여야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차세대 기대주'로서 부각될 수 있었을 텐데...

5.31선거운동이 끝나가는 30일 오후 느끼는 안타까움이다.
심형준 기자

댓글이 0 개 있습니다.

↑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