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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의문사 10% 이상이 사인 조작”

과거사위 폐지 방침에 미처리 200여건 유야무야 위기

정민우 하사(당시 23세)는 지난 1982년 9월 27일 선임인 박 모 하사에게 주먹으로 가슴을 맞고 쓰러져 내무반으로 옮겨진 뒤 사망했다. 그러나 당시 정 하사의 사망원인은 ‘취침 중 음주 취기로 인해 구토물이 목에 걸린 질식사’로 발표됐고 부대 내에는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자”는 암묵적인 은폐가 있었다.

송창호 일병(당시 21세)는 지난 1969년 10월 10일 선임병 최 모 병장이 휘두른 공구에 맞아 바닥에 쓰러져 병원으로 호송되던 중 사망했다. 군 당국은 송 일병이 취기로 인해 시멘트바닥에 넘어져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송 일병은 사망한 지 38년만에 군의문사위의 진상 규명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군 의문사위 2년 총 6백건 중 1백51건 종결

이상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6일 출범 2주년을 맞아 서울 남창동 위원회 회의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진상규명을 종료한 1백51건 중 밝힌 주요 사건들이다.

군의문사위에 따르면 군대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장병들의 유가족들이 신청한 진정사건은 총 6백건이며 그 가운데 1백51건이 종결됐다. 진상규명은 43건, 기각은 25건, 진상규명 불능은 6건, 각하가 9건이었다.

군 의문사 사건이 대부분 20~30년 이상 시간이 지난 사건들을 수사해야 하고 폐쇄적인 군 사회의 특성 상 외부인의 조사가 순탄치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43건의 진상규명은 결코 작지 않은 수치.

군 의문사위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진상규명 사건들의 심각한 공통점은 진정사건의 60%에 달하는 인권침해와 의문사를 양산하는 군 사회의 사인조작이었다.

이해동 위원장은 특히 이날 기자회견에서 “위원회 활동을 통해 과거 군에서 단순 사고나 병사 등으로 처리된 사건이 실제는 폭행치사로 사망한 사건을 은폐, 조작한 진상 규명 사건이 43건 중 5건으로 10%가 넘는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또 “위원회 조사 결과 군 의문사 사건의 대부분에서 인권침해가 존재했고 진상규명 결정 사건의 58%에서 구타나 가혹행위, 성추행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밝혀졌다”며 “군대 내에서 공공연히 폭력이 행해지거나 묵인되었던 과거 군대문화의 고질적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위원장은 군의문사위 2년의 성과로 자살사건의 국가책임의 근거를 명확히 한 것과 망자와 유가족에 대한 실질적 혜택과 예우를 받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한 것을 꼽았다.

이 위원장은 “군의문사 진상규명 작업은 유가족의 한을 풀고 군과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막중한 작업”이라며 “위원회의 조사결과가 그동안 군인의 죽음으로 빚어진 불신과 반목을 털어내고 화해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과거사위 폐지 방침에 미처리 2백여건 유야무야 위기

지난 2006년 특별법에 따라 조사활동을 개시한 군의문사위는 기타 과거사법과 달리 조사 연장 기한이 명시되어있지 않아 올해 말로 활동을 종료하게 된다. 위원회 내부적으로는 연장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명박 정부가 과거사위 전원 폐지 방침을 세움에 따라 활동 연장은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군의문사위는 종료기한까지 총 4백여건의 진정사건을 처리할 것이라고 밝혀 2백여건의 미처리 진정에 대한 처리가 향후 과제로 남게 됐다.

이 위원장은 “법정시한까지 조사를 마치지 못하게 될 사건들을 어떻게 처리할 지가 또 다른 문제”라며 “분명한 것은 국가기관에서 접수한 진정은 국가가 책임 있게 처리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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