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재임명된 KBS 정연주 사장이 27일 출근 저지에 나선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노조원들을 피해 주차장 출구로 출근한 뒤 임기를 시작했다.
정 사장이 이날 파행 출근에 이어 임직원들이 모이는 취임식 행사를 따로 하지 않고 이날 사내방송을 통해 취임사를 발표하는 파행 취임식을 갖는 데 대해 앞으로도 KBS는 혼란을 거듭할 전망이다.
노조 반발에 지하주차장 출구로 출근
이날 정 사장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본관 사옥 주차장 입구에서 오전 7시부터 대기하고 있던 조합원들을 피해 9시경 주차장 출구 쪽으로 진입했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지하 주차장과 연결된 본관 출입문을 통해 사장실로 올라갔다.
이에 대해 KBS본부 비대위 소속 조합원 15명은 규탄 시위를 열었고, 진종철 본부장은 "떳떳하게 KBS에 입성하지 않고 입구가 아닌 출구로 들어온 정연주씨를 누가 KBS의 수장으로 인정할 수 있겠느냐"며 "투쟁은 오늘부터 시작이다. 현 집행부는 임기가 끝나는 12월31일까지 정연주씨와 싸우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달말 선거를 통해 새 집행부를 구성하면 본격적으로 정사장과 싸움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정연주 "사장인 내가 앞장서 KBS 독립성 지키겠다"
정 사장은 이날 출근에 이어 오전 10시부터 30여분간 사내방송을 통해 "KBS를 떠난 지난 두달 동안 귀한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며 "한국 사회는 극심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단순한 이분법에서 나오는 극단주의는 교조주의에 빠지게 하고 이것은 다양성과 집단의 지혜, 합리성을 거부한다. 이 시점에서 공영방송 KBS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취임사를 발표했다.
정 사장은 "KBS는 정치와 자본 뿐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모든 집단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의 기능을 해야 하고,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며 "갈등과 분열, 대립이 극심한 전환기에 사회적 통합을 이뤄내는 용광로 역할을 해야 하고, 선정적 상업주의와 다매체 환경에서 공영성을 지키는 마지막 파수꾼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사장은 "KBS는 각종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리가 모두 힘과 지혜를 모은다면 해낼 수 있다. 사장인 내가 맨 앞에 서서 온 몸으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고 제도적 물적 토대를 만들어나가겠다"고 주장했다.
정연주 KBS사장이 재취임 일성으로 수신료 인상 추진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수신료 인상 추진' 또 약속
정 사장은 KBS 위기와 관련 ▲공영방송에 대한 개념이나 법적 제도적 장치가 허술한 점 ▲25년째 월 2천5백원으로 동결돼 있는 수신료 문제 ▲3년마다 재허가 심사를 받아야 하는 현실 등을 열거한 뒤, "이러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대외 기능을 총괄할 특임본부장을 임명하겠다"고 밝혀, 재임기간중 수신료 인상 추진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정 사장은 1기 임기 중에도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다가 여론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포기한 바 있어, 회사 안팎에서 거센 반발에 직면한 데다가 경제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정 사장이 과연 수신료 인상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공발련 등 보수진영은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 정 사장 재취임에 맞서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정 사장은 이밖에 "특히 회사 안팎에서 여러 지적이 있었던 팀제도 보완,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며 "팀제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이완, 냉소적 분위기, 간부급의 사기 저하, 팀장의 업무 가중 등 여러 부작용이 있었다. 장점을 지키되 부작용과 문제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말해, 1기때 자신의 대표적 치적(?)이었던 팀제의 수정을 약속하기도 했다.
정 사장은 또한 사내 통합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정 사장은 "출근 저지와 퇴진 등 정치투쟁으로 치달으면서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노조 집행부와 대화하기 참으로 힘들었다"며 "새로 구성될 노조 집행부와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상생의 동반자 관계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상 출근과 취임식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노조의 반발이 격심한 데다 경영도 좀체 개선될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그동안 조직 장악력 등에서 낙제점을 받았던 ‘정연주호’가 지휘하는 KBS가 정상 궤도로 재진입하기는 좀체 어려울 전망이어서 향후 KBS 정상화를 놓고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