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 “미국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김원웅, “미국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신승근의 도전인터뷰]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북한을 범죄정권으로 부른 브시바오 미국 대사에 소환 경고한 김원웅 의원
“미국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지 않는 한 우방이 될 수 없어”
“대북 강경 발언이 이어질 경우 본국 소환 요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 북한을 범죄정권으로 규정하고, 보수단체가 주최한 북한인권대회에 참석하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거듭해온 알렉산더 브시바오 주한 미국 대사에게 직격탄을 날린 김원웅 의원(열린우리당·대전 대덕)의 12월13일 발언이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거물급이라 잘난 척하는 태도인가
<한겨레21>은 12월15일 논란의 중심에 선 김원웅 의원을 만났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인 그는 “보수단체의 북한인권대회에 깊숙이 개입돼 있는 브시바오의 최근 언행은 명백한 내정간섭”이라며 “한국에 부임해 북한 인권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반민족 수구세력들을 만나 엎어지고 하면서 그게 한국 정서의 전부라고 착각한 것 같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최근 부시 대통령 등의 잇단 대북 강경 발언에 대해 “한반도 평화를 깨자는 네오콘적 시각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의 임기 안에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킬 의지가 없고, 한반도의 평화정체제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말하면서 “옛날에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막아주는 게 우리 우방이었지만, 미국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지 않는 한 우방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 사회의 이른바 ‘먹물’들, 미국에 가서 공부 좀 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미국 문제에 대해 신중함·세련됨으로 치장하지만, 그런 태도는 우리 국민에게 체념과 좌절감을 심어줄 뿐”이라며 “굴종하고 미국의 눈치를 봐 한-미 관계의 평화를 찾자는 태도를 보이려면 뭐하러 독립국가를 하느냐. 그냥 미국 식민지, 미국의 1개 주로 편입시켜달라고 요구하고, 그랬으면 지금 국민소득 3만달러는 됐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 (사진/ 박승화 기자)
왜 브시바오 주한 미국 대사를 공격했나. 총독 같다고까지 말했는데.
=브시바오는 남북 관계에 대한 한국 쪽의 노력에 대해 “한국이 남북 경제협력을 신중히 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노력을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정이란 아주 고압적인 말로 외교관으로서 부적절한 언사다. 또 그 이유가 한국의 경제협력이 북쪽의 군사력 강화에 이용될 수 있다고 했는데, 한국의 경제협력이라는 게 뭐냐. 개성공단을 보면 신발, 의류, 손목시계, 주방기구, 자동차 부품 정도를 생산한다. 그것도 우리가 만들어놓은 것을 단순조립하고 있다.
공단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도 우리 당국과 기업이 행사한다. 물품이 반입될 때 바세나르협약, 정전협정, 미국의 수출통제법 등 이중삼중의 통제를 받고 있다. 오히려 그 때문에 남북의 능률적 경협이 장애를 받는다. 전혀 근거도 없는 군사기술 유출 얘기를 하는 것은 남북 간 경제협력을 못마땅해하는 속내를 드러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 남북 경협을 못마땅하게 생각할 이유가 있나. 경협을 통해 북한이 열리면 더 좋은 것 아닌가.
=북한 전복 의사가 있는 네오콘들은 남북 경협을 통해 북한 경제가 호전되고, 식량난이 해결돼 북한이 안정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경제가 안 풀려 북한 주민이 굶주리고 탈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북한 체제가 붕괴되기를 바라는 네오콘적 시각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기아로부터 해방이라는 생존권적 인권 문제를 볼모로 삼아 북한을 압박하려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이 말하는 인권, 악어의 눈물 같은 이중적인 인권이다.
아무리 강대국의 대사지만 외교적 예의범절은 갖춰야 하는 게 상식인데, 브시바오는 왜 그리 강경한가.
=주재국의 입장과 국민 정서를 이해하는 게 외교관이 취해야 할 기본 태도다. 미국 국무성에서 한-미 관계에 관한 강경 발언이 나와도 역대 대사들은 완충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브시바오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인다. 혹시 본인이 전 러시아 대사를 하다 한국으로 왔다는 것, 즉 거물급이라고 과시하고 잘난 척하려는 태도가 비외교적 언행의 일탈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그는 보수와 진보가 갈려 있고, 특히 정부와 대립하는 수구언론·수구세력들이 적극적 입장을 취하는 북한 인권 문제를 가지고 국내 정치에 과도하게 관여해왔다. 북한 인권 문제를 연결고리로 과도하게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것도 명백한 내정간섭이다. 우리가 소수인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의 흑백 분규 집회에 참여하고,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이나 카트리나 사태 직후 소수인종 소요에 대해 ‘당신들이 압박·차별받고 있는데 이것은 미국 정부의 잘못이다. 이게 소수민족의 인권을 위한 것’이라고 얘기하면 말이 되겠나.
미국 국무부는 브시바오의 대북 강경 발언에 대해 “미국의 정책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부시 미국 대통령도 최근 대북 강경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난 두 가지 가능성을 추론하고 있다. 먼저 브시바오가 한반도 문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게 아닌지. 또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 한반도 평화를 깨자는 네오콘적 시각이 반영된 것이 아닌지. 어떤 경우든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최근 미국 외교가 일각에서 브시바오가 서울과 모스크바를 혼동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는 모스크바에서도 거침없이 얘기했다.
그런데 언론을 통제하는 모스크바에서는 아무리 떠들어도 전혀 보도되지 않고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다. 언론 자유가 보장된 한국에서는 말하는 족족 다 나가고 문제가 된다. 브시바오는 왜 모스크바에서는 문제되지 않던 게 한국에서는 말썽이 나냐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그가 한반도 전문가가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다.
△ 브시바오 주한 미국 대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북한인권국제회의에 참석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역할' 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브시바오는 ‘평화정착 의지’가 없다
유재건, 유선호 의원 등 여당 안에서조차 김 의원의 발언이 신중치 못했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린 브시바오의 언행에 대해 비엔나 외교협약에 따라 일정한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 외교부가 미 대사를 불러 주의를 촉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외교부가 그렇게 할 의지가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다. 브시바오 소환결의안 제출 검토 발언은 그에 대한 경고다. 이 경고에도 불구하고 비외교적 발언을 계속하면 소환결의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내 일각에서 브시바오가 부적절한 언사를 한 게 분명한데도 그때는 침묵하다가 내 말에 제동을 거는 태도는 좀 납득이 안 된다. 신중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신중이란 말로 포장된 비굴함이고 소심함이다. 우리 외교가에 찌든 낡은 관행인 눈치보기다. 이제 이런 낡은 옷은 벗어던져야 한다. 우리 사회의 이른바 ‘먹물’들, 미국에 가서 공부 좀 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미국 문제에 대해 신중함·세련됨으로 치장하지만, 그게 무슨 신중이고 세련이냐. 그런 태도는 우리 국민에게 체념과 좌절감을 심어줄 뿐이다.
미국이 한국민 정서에 아랑곳 않고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독재국가라고 맹렬히 비판하는 이유는 뭔가.
=역사상 어떤 강대국도, 교전국조차도 평화협정 테이블에 앉았을 때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신중을 기한다. 그게 평화회복 의지다. 최근 부시와 브시바오의 발언은 불길한 예감을 갖게 한다. 자신의 임기 안에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킬 의지가 없다, 한반도의 평화정체제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리가 계속 예리한 시각으로 주시하고, 부시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고 견인해야 한다.
우리안의 노예근성, 소심함, 비굴함
미국이 일부러 한국과 북한의 갈등과 불신을 조장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북한을 범죄국가, 악의 축이라고 말하면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뻔하다. 북한의 강경 반응을 유도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노력을 흔들자는 의도가 아니라면 북한의 반발이 예측되는 발언을 왜 하나.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미국의 진정성을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물어야 한다.
미국이 그렇게 해서 뭘 얻을 수 있나. 지금까지 미국도 6자회담에 나오지 않았나.
△ 김원웅 의원은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미국의 진정성을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박승화 기자)
=근본적으로 미국이 생각하는 동북아에서의 역할, 미-일 동맹체제 속에 분단된 한반도를 예속시키는 게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일본 중심의 외교정책이 우리가 추구하는 자주·평화·화해 노력과 부딪치고 있다고 본다.
미국의 역대 정책 결정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해온 동북아 정책의 큰 틀을 수정했다는 조짐은 없다. 구시대의 낡은 패러다임과 증가된 남북한의 민족적 역량이 충돌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적은 비용으로 만만하게 한반도를 컨트롤하는 데 길들여진 미국의 보수세력에게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통일된 한반도가 싫은 것이다.
브시바오가 뒤늦게라도 정신을 차리고 멈춰주면 좋겠지만, 계속 내정간섭적 발언을 하면 어쩌나.
=1단계로 외교부가 그를 불러 조치해야 한다. 그것이 안 되거나 그것으로도 안 된다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서 불러내고, 소환결의안까지 준비할 것이다. 작지만 부당하게 자존심과 국익을 건드리면 어떤 강대국이라도 간과하지 않는 민족성을 갖고 있다는 점, 부당한 압력을 가할 경우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민족이라는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과 외교부는 아직도 제 할 말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좀 솔직해야 한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 운명을 우리가 결정한 적이 없다. 외세가 결정했다. 그 때문에 우리 안에 우리도 모르는 노예근성이 자리잡고 있다. 웬만하면 참고, 마땅히 주장할 바도 말 못하고…. 우리 안에 찌들린 노예근성, 소심함, 비굴함을 자꾸 신중, 세련으로 미화하고 포장한다. 3년 전 효순이·미선이 사건 때 미국 대사관, 주한미군 사령관은 아무 책임이 없다고 얼마나 버텼나.
심지어 보수언론은 우리가 효순이·미선이 문제를 제기할 때 빨갱이, 친북세력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우리가 촛불시위로 힘을 보여주니 그보다 훨씬 작은 사건인 미군의 교통사고에 대해 부시까지 즉각 사과했다. 잠자는 우리 역사의 어깨를 흔들어 깨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브시바오 발언을 이번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면, 다시는 어떤 대사도 함부로 한국을 깔보는 태도를 보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돼야만 미국이 한국을 존중하고 한-미 관계가 좋아진다. 굴종해서 평화를 찾겠다는 것, 미국의 눈치를 봐 한-미 관계의 평화를 찾자는 태도를 보이려면 뭐하러 독립국가를 하나. 그냥 미국의 식민지로 들어가든지, 일본 식민지로 남아 있지. 미국의 1개 주로 편입시켜달라고 요구하든지. 미국 식민지를 했으면 지금 국민소득 3만달러는 됐을 것이다.
어쨌든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은 김 의원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들은 원죄가 있다. 보수언론 주류가 친일·반민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삶의 지혜는 강대국에 굽실거리고 일반 백성에게 권위적으로 군림해온 기득권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북한에 인권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관련된 것이니 북한 인권 문제도 예외일 수 없다. 단, 지금 북한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 그것을 개선할 주체인 북한 당국이 체제 전복 시도로 받아들인다.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미국의 네오콘과 국내 보수세력은 지금도 북한 체제 전복을 얘기하고 있다.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바로 북한 체제의 전복을 요구해온 사람인 것이다.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진보세력이 안타까워하면서도 절제하는 이유는 그 사람들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권 문제를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 공안세력과 함께 인권 탄압에 동조·동참했던 세력들이 북한 인권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도 20~30년 전 인권 문제로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시달렸나. 하지만 6월항쟁 등 우리 내부의 동력으로 해결했다. 북한에도 내부의 동력으로 해결할 기회를 줘야 한다.
브시바오여, 만나서 이야기하자
의원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더 하고 싶은 말은 없나.
=우리가 어떻게 감히 미국 대사 소환을 말할 수 있냐고들 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우리의 조국은 대한민국인데 우리 조국의 조국은 미국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 사람들에게 내 언동은 불경죄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주권국가라는 사실을 잊고 몸에 밴 식민지 노예근성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미국 정부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지 않는 한 우리 우방이 될 수 없다.
옛날에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막아주는 게 우리 우방이었지만, 이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지 않는 나라는 우방이 될 수 없다. 이것을 브시바오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 부임해 북한 인권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반민족 수구세력들을 만나 엎어지고 하면서 그게 전부라고 착각한 것 같다.
한국의 보수언론들이 자기 발언을 크게 다뤄주니, 그게 한국 국민의 일반 정서라고 착각한 것 같다. 한국 사회, 국민의 일반적 정서를 간과한 것이고, 브시바오가 한반도 전문가가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브시바오를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한번 얘기하자고 제안하겠다. 무엇이 한국을 위한 것인지. 그도 나를 안 만난다는 말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말 비서에게 미국 대사관 정치참사관과 대사 비서실장을 찾아 연결하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