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후보의 '망부가(亡父歌)'
"노인네가 모닥불 쬐며 밤새 앉아있는 것 보고 피눈물 흘려"
어제는 두 후보님들이 싸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오늘 와서 보니까 직접적으로 싸우지 않고 은근슬쩍 또 싸우네요. 이 정도 싸우는 것은 경선의 양념이고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홍준표의 라이프 스토리, 인생은 어떻게 살았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홍준표는 울산사람입니다. 33년 전에 울산 복산동으로 우리 가족 전부가 이사를 했습니다.
저는 경상남도에서 태어났습니다. 7살 때 가사를 다 탕진하신 아버님을 따라 걸어서 리어카를 끌고 대구로 이사를 갔습니다. 신천국민학교, 신암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4학년때 다시 창녕읍까지 내려왔습니다. 6학년 때는 합천 산골로 들어갔습니다. 합천에서 하천 부지 1400평 농사를 짓다가 홍수가 지면 막노동을 했습니다.
중학교는 대구로 올라가 영남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6년 동안 장학생으로 살았습니다. 지금 여기 와 계신 김호기 위원장께서 저한테 단팥빵을 줬습니다. 저는 점심밥을 먹지 못하고 수돗가에서 물로 배를 채웠습니다. 당시에 학생들이 단팥빵을 사먹는 게 부러웠습니다. 지금도 저는 단팥빵만 좋아하고 먹습니다.
1974년에 울산 복산동으로 이사했습니다.제가 대학교에서 제적됐다가 재입학해서 2학년때 서울서 고학을 했습니다. 어머니, 어버지, 여동생, 누님 두 분이 합천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가지고 있는 재산 다 팔고 30만원 나왔습니다. 그 돈으로 복삼동으로 이사갔습니다.
아버지는 현대중공업에 임시 경비를 했습니다. 낮에는 경비를 하고 밤에는 철판 쪼가리 그것을 잃어버릴까 해서 횃불을 켜놓고 밤새 경비를 했습니다.
74년 겨울 방학 때 내려와서 밤에 아버지가 경비 서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두운 바닷가에서 노인네가 모닥불에 손을 쬐면서 밤새도록 앉아있는 걸 보고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제 몸무게가 48㎏이어서 막노동도 할 수 없어 죽기살기로 공부했습니다.
검사가 돼 이 땅의 나쁜 놈 다 잡았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도, 내 아버지가 그래도 나는 살면서 아버지를 한 번도 원망한 일 없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그 바닷가에서 영하 15도 바닷가에서 아버지는 병을 얻어 이듬해 돌아가셨습니다.
홍준표가 왜 서민대통령을 내세웠겠습니까. 서민대통령을 내세운 이유는 검사출신이니까 귀족출신 아니냐, 국회의원 세 번 했으니 귀족출신 아니냐 해서 (이를 가리려고) 내세운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자식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검사도 되고, 국회의원도 하고, 이제는 대통령을 한다고 나오는 대한민국이 돼야 하고, 이런 사람을 격려해야 하는 나라가 돼야 합니다.
홍준표는 일도 잘하고 흠도 없고, 거기다가 말도 잘합니다. 홍준표가 대통령이 되면 빈손으로 청와대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나오는 대한민국 최초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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