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연준(FRB)의장의 금리인하후 달러화 가치가 폭락하고 유가와 금값이 폭등하는 등 거센 '버냉키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잠시 반짝 '마약효과'에 취해 급등하던 세계주가도 실물경제에 치명적인 버냉키 역풍에 멈칫하는 분위기다.
달러 값 폭락
월가와 워싱턴 정가의 압력에 굴복한 버냉키 의장의 대폭적 금리인하는 우선 달러화 폭락을 초래하고 있다. 달러화가 폭락하면 미국의 수입물가가 급등하면서 미국의 인플레 가중, 무역적자 확대 등 심각한 부작용을 몰고 오게 돼 있다.
전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유로당 1.3962달러에 마감한 미 달러화는 20일(현지시간) 사상최초로 유로당 1.4달러 선을 넘어서며 급락세했다. 이날 달러는 유로당 1.4097달러까지 급락했다가 1.4068달러로 거래를 마감했다. 올해 초 유로당 1.3201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6% 이상 가치가 급락한 것.
미 달러화는 캐나다 달러에 대해서도 급락, 이날 달러당 0.9996캐나다달러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즉 미 1달러를 주고 캐나다 1달러로 바꾸지 못한다는 얘기. 미 달러화 가치가 캐나다 달러보다 떨어진 것은 1976년 이후 31년 만에 처음이다.
미 달러화는 또 일본 엔화에 대해서도 1.4% 가치가 떨어지면서 달러당 114.40엔에 거래됐고, 우리 원화에 대해서도 달러당 9백23원으로 떨어졌다.
이처럼 달러화 값이 급락하면서 미국채권에 대한 불신도 커져, 국채수익률이 급등하는 등 채권값이 급락조짐을 보이는 등 그동안 세계기축통화 역할을 해온 달러화와 미재무채권(TB)에 대한 신뢰가 밑둥채 흔들리고 있다.
금리인하후 본격 불기 시작한 역풍에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벤 버냉키 미연준의장. ⓒ연합뉴스 원유.금 등 국제원자재값 폭등
달러화가 급락하자 국제투기자본이 원유와 금 등 원자재시장에 몰리면서 원자재값이 연일 폭등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달러화 약세에 따라 원유 수출시 달러화로 돈을 받는 산유국들이 유가 상승을 방치함으로써 손실을 보전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유가급등을 부추키고 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는 전날보다 1.39달러(1.7%) 오른 배럴당 83.32달러에 거래를 마감해 4일 연속 종가 기준 최고치를 경신했다. WTI 선물 가격은 이날 장중에 배럴당 83.90달러까지 치솟아 84달러에 육박하기도 했다.
금 값도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의 경우 온스당 전날보다 10.4달러 오른 739.9달러에 마감했다. 금값은 온스당 746.3달러까지 치솟기도 해 27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월 인도분 은 가격도 이날 3% 가까이 급등하면서 온스당 134.7달러에 마감했고, 백금은 20.1달러 오른 1천328.6달러에 거래됐다. 동(구리) 가격도 파운드당 3.5945달러로 1.9센트 오르는 등 모든 원자재가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유럽 주가 하락세 반전
버냉키 역풍이 거세게 불기 시작하자, 금리인하에 잠시 반짝 급등세를 보이던 미국, 유럽 주가도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20일(현지시간)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48.86포인트(0.35%) 내린 13,766.70에 거래를 마감했다. 나스닥 종합지수는 12.19포인트(0.46%) 하락한 2,654.29를,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500 지수도 10.28포인트(0.67%) 떨어진 1,518.75로 거래를 마감했다.
이날 주가 하락에는 뉴욕 소재 민간경제연구소인 콘퍼런스 보드가 이날 8월 경기선행지수가 0.6% 하락했다고 밝혔다. 8월 지수 하락폭은 월가가 예상했던 0.5%보다 큰 것으로, 이는 지난 6개월 새 최대 하락이다. 7월 지수는 0.7% 상승했었다. 경시선행지수는 3~6월후 경기흐름을 나타내는 지표다. 무디스 이코노미닷컴의 애론 스미스 수석애널리스트는 "경기선행지수가 0.7%나 급락으로 반전된 것이 결코 좋지 않다"고 우려했다.
유럽 증시도 하락했다. 특히 유로화 강세가 유럽기업들의 대미수출에 타격을 입힐 것을 우려해 수출 대기업들의 낙폭이 컸다.
이날 영국 FTSE 100지수는 31.00포인트(0.48%) 하락한 6,429.00, 독일 DAX지수는 15.75포인트(0.20%) 떨어진 7,735.09로 마감했다. 프랑스 CAC 40지수도 전날에 비해 42.06포인트(0.73%) 떨어진 5,688.76으로 장을 마쳤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미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신용위기가 `중대한 시장 스트레스'를 초래했으며 이러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금리인하와 더불어 최근 몇 주간 긴급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고 금리인하의 불가피성을 밝혔다. 그는 또 "더 많은 주택소유자들이 변동금리 형태로 된 모기지 상환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며 "최악의 모기지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주택가격이 여전히 하락추세인데다 최근에 주택자금을 빌린 많은 서브 프라임모기지 대출자들이 금리를 재조정하는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이런 등급에 속한 모기지 대출의 경우 연체와 주택압류 비율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주택압류 조치가 얼마나 취해질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어려우나, 역사적으로 주택압류 통보를 받는 사람의 절반 정도가 결국 집을 포기해야 했는데 앞으로 과거보다 서브 프라임모기지 대출자들의 비율이 높아 집을 포기하는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미국의 신용경색이 확대되면서 최근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을 쳤지만 국제금융시스템은 상대적으로 강력하다"며 이번 위기가 국제적 금융위기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버냉키 의장이 궁지에 몰리자,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이 적극적 지원사격에 나섰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가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극찬했다. 워싱턴의 압박에 따라 금리인하를 단행한 버냉키에 대한 적극 방어인 셈.
부시 대통령은 또 "주택시장이 불안한 시기를 겪고 있지만 미국 경제는 낮은 인플레이션과 건전한 고용시장으로 인해 여전히 강력하다"며 "미국의 경제 펀더멘털은 강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주택시장이 약간 불안한 시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의문이 없다"며 주택시장의 불안은 시인했다.
그린스펀 "금리인하했어도 경기침체할 것"
그러나 금리인하가 몰고올 인플레를 우려, 금리인하에 반대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연준의장은 우회적으로 버냉키의 결정을 비판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이날 자신의 회고록 <격동의 시대> 출간후 가진 인터뷰에서 "주택가격이 아직까지 3%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더 아래로 움직이고 있다"고 미국집값 추가하락을 예고하며 "연준이 금리인하를 했지만 주택가격의 추가하락이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미국 경제가 침체로 갈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