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판사들, 윤리위의 '신영철 솜방망이 결정' 반발
반발 확산되며 5차 사법파동 관측까지 확산
신 대법관이 배당권을 남용하고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법관들이 신 대법관을 직접 비판해가며 사퇴를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존경 철회한다" 직격탄 = 판사들은 대체로 신 대법관 사태가 불거진 후 대법 진상조사위와 공직자윤리위의 결론을 지켜보자며 구체적인 의견을 내는 것을 극도로 자제해왔다.
하지만 지난 8일 윤리위가 다소 가벼운 처분으로 보이는 `경고나 주의 권고'를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건의하고 사태가 마무리될 기미가 보이자 법원 안에서는 이에 반발하는 분위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윤리위 결정에 실망한 소장 판사들은 법원 내부 전산망에 다소 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윤리위 결정을 비판하고 신 대법관이 물러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이옥형(39ㆍ사법연수원 27기) 판사는 11일 "대법관은 정의로워야 하며 이런 요건을 갖추지 못한 대법관이 있다면 그 존경을 철회하겠다"며 신 대법관을 정면 겨냥했다.
목포지원 유지원(35ㆍ29기) 판사는 "이번 사태로 고초를 겪은 수많은 판사에 대한 사과를 기대하는 것이 신 대법관에게 과도한 요구는 아니라고 믿는다"며 "결자해지 측면에서 결단을 부탁하며 만약 다른 결단을 한다면 최소한 이유라도 밝히라"고 압박했다.
서울동부지법 오경록 판사(39.28기)는 "윤리위 회부 자체도 못마땅했지만 그 결정이 주는 충격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대법원장이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조치를 내려줄 것이라 믿고 싶다"고 말했다.
실명으로 내부망에 글을 올린 판사 외에도 윤리위 결정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속속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평판사는 "윤리위 결정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문제가 있으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나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누가, 왜 반발하나 = 서울서부지법 정영진 부장판사(51.14기)의 글을 시작으로 이날 오후 6시 무렵까지 전국적으로 6명의 판사가 실명으로 윤리위의 결정을 비판하는 글을 잇따라 올렸다.
적극적으로 댓글을 달며 동조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주축은 30대 소장 판사들로 이들은 재판개입 파문 이후 적극적 의견 개진을 삼가했었다.
이들은 외부 인사까지 참여한 윤리위의 판단이 앞선 대법원 자체 진상조사위의 결정보다 내용 면에서 후퇴했다는 점이 큰 문제라는 입장이다.
윤리위는 신 대법관이 이메일을 보내거나 보석을 신중히 하라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이 사법행정권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부적절했다는 결론을 내놨는데, 이는 신 대법관의 행위가 사법행정권 남용이었다는 진상조사위의 결론과 취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유 판사는 "윤리위 결정과 진상조사단 결과가 배치돼 상반된 두 견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공이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고 말았다. 이를 결정할 법관회의가 필요하다"고 공식 제안했다.
한편 법원 내 진보적 성향의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인 부산지법 문형배 부장판사(44.18기)는 "(법원) 내부자에 의한 재판권 침해를 용인한다면 외부자에 의한 침해를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그는 "이 글은 개인의 견해이며 소속된 단체의 견해와는 무관하다"며 우리법연구회의 집단적 의견을 수렴한 것은 아님을 강조했다.
◇ 법원별 판사회의에서 `진통' 예상 = 소장 판사들이 이번 사태를 재논의할 법원별 판사회의 소집 필요성을 공식 제안, 각급 법원에서 판사회의 소집 요구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규칙에 따르면 판사회의는 통상 1년에 두 번 법원장의 소집으로 정기적으로 열리지만 판사 3분의 1 이상의 소집 요구가 있으면 해당 법원장은 지체 없이 임시 판사회의를 개최해야 한다.
판사회의는 `사법부 운영에 관해 대법원장에게 건의할 사항'이나 `회의 소집을 요청한 판사들이 의제로 할 것을 요청한 사항' 등을 폭넓게 논의한다.
회의가 열리면 자연스럽게 신 대법관의 거취 문제가 거론되겠지만 다양한 의견이 직접 충돌하면서 법원 전체 의견수렴에는 큰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법원 안에서는 다른 판사의 거취에 대해 함부로 언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공감대가 있던 게 사실이고 윤리위 결정에 대해서도 고위 법관을 중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2003년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가 대법관 인선 관행에 항의해 `대법관 제청에 관한 소장 법관들의 의견'이라는 글을 올린 뒤 전국법관회의가 열려 이후 전효숙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여성 첫 헌법재판관, 김영란 대전고법 부장판사가 여성 첫 대법관이 됐는데, 이것이 가장 최근의 4차 사법파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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