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2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뜬금없이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을 끄집어냈다. 지난 10일 회동 사실을 언론에 밝힌 것이다.
물론 김 원내대표는 “총장을 마친 후 위로 시간을 한쪽에서 대접해야 하는 모양이어서 저녁 먹고 정운찬 전 총장이 친한 서울대 교수 몇 분을 모셔서 작은 카페에 가서 여럿이 모여서, 사람이 많은 홀에서 와인 한 잔을 하고 헤어졌다"며 "중도개혁세력에 대한 얘기도 없었고, 정치한다 안한다는 얘기도 없었다"고 밝혀 정치적 모임이 아니었음을 강조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시선은 정운찬 전총장이 혹시 정치에 뜻이 있는 게 아니냐는 쪽으로 쏠리고 있다. 정치에 뜻이 없으면 뭣하러 집권당의 원내대표를 만났겠다는 식이다. 열린우리당으로선 어쩌면 이런 효과를 기대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운찬 전 총장, 아니 정운찬 교수는 그러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본인 표현을 빌면 말 그대로 '평교수' 생활 그대로다.
총장 퇴임후 지난주 처음 만난 정 교수는 철저히 자신의 교수실과 강의실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근황을 말했다. 전임 총장이기에 부득이 참여해야 하는 학교 공식행사에만 참가할 뿐, 학과장에게 부담을 줄까봐 아직까지 학과장실에도 한번 들르지 않았다 했다. 오후에 한차례 교수 휴게실에서 석간신문을 읽는 것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방에서 지내고 있다 했다.
때로는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까닭에 후배 회원들로부터 논문을 한번 감수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논문을 읽기도 한다.
지난 1일 평교수로 복귀해 학생들과 첫 만남을 갖고 있는 정운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연합뉴스
가장 큰 고역은 교수실로 걸려오는 온갖 전화를 혼자 다 받다보니 조용한 시간을 갖기가 힘든 것이라 했다. 조교에게 잡일을 시키는 것 같아 조교도 두지 않다보니 발생하는 불편함인 셈이다. 특히 언론 등에게 걸려오는 전화가 가장 골치 아프다 했다. 여러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전화가 많기 때문이다.
총장 관저에서 나온 뒤 옮겨간 방배동 자택과 학교 사이는 택시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 집에 있는 자가용은 부인 몫이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한 집안에 차가 두대나 있을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에 택시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 했다. 자가용은 탄 지 5년이 지나 총장 퇴임 기념으로 교체해줄까 생각 중이다.
원래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할 생각이었다. 그러자 아들이 극구 반대했다. 아직도 정 교수를 비난하는 황우석 지지자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지하철 등에서 예기치 못한 봉변이라도 당할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당분간은 가족들 걱정 때문에 택시 신세를 더 져야 하겠으나, 곧 지하철을 이용할 생각이라 했다.
총장을 그만둬 가장 좋은 것은 더이상 '폭탄주'를 안 마셔도 된다는 사실이라 했다. 정 교수는 원래 '폭탄주'를 싫어한다. 그러나 총장이 되자 마셔야 했다. 학교 발전기금을 모아야 했기 때문이다. 총장이 된 후 산업자원부장관과 폭탄주를 세게 마셔야 했다. 7잔이나 마셨다. 산자부가 서울대에 70억원의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한잔당 '10억짜리 폭탄주'를 마신 셈이라고 정 교수는 회상했다.
총장 퇴임후 부득이 한두 재계 인사들과도 만났다. 학교발전기금을 모으느라 신세를 진 까닭에 이들의 만남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였다. 그는 총장 재임 4년동안 현금으로만 1천6백억원의 발전기금을 모았다. 하루에 1억씩 모은 셈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도와준 이들의 만남 요청을 모질게 거절할 수 없는 처지다.
정 교수는 정치 얘기는 딱 사절이다. 정치인들도 만나길 극구 기피하고 있다. 단 한명 예외는 김종인 민주당의원뿐이다. 예전에도 그랬듯 일주일에 한번씩은 만난다. 나이차를 뛰어넘은 두 사람의 교우는 유명하다.
인연은 1980년대 후반 전두환 정권 말기때였다. 당시 정 교수는 선두에 서서 직선제 개헌 투쟁을 전개했다. 당연히 전두환 대통령이 발끈했다. 정 교수를 지목해 짜르고 잡어넣으라 했다. 이때 정교수와 일면식도 없던 김종인 당시 민정당의원이 전 대통령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직언을 했다. 정 교수같은 인재를 그렇게 해선 안된다고 반대했다. 평소 정교수의 글과 식견을 높게 평가한 탓이다. 전 대통령은 결국 김 의원 고집에 뜻을 꺾었다. 해고와 구속을 각오하고 싸우던 정교수는 자신에게만 아무런 탄압도 뒤따르지 않자 의아해 했고, 그후 전후사정을 알게 된 뒤 김종인 의원을 만나 나이를 뛰어넘은 교우를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서로를 알아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딱 한마디 정치 얘기를 하긴 했다.
"조순형 민주당의원 멋있잖아요?"
원칙이라는 단 한가지 무기로 '일인군단'의 위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조순형 의원에 대한 찬사였다. 그가 바라는 '정치의 모습'이기도 했다.
정운찬과 김종인 박태견 기자까지 셋이 각별한 관계. 기자들도 기사쓰는 상대방에 대한 친소관계를 밝혀가며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정운찬이 평준화 반대소신 밝혀 욕얻어먹고 있을 때 프레시안에서 정운찬 변호하는 기사 써준 사람도 박기자였고. 그걸 보면, 비판받아야할 때 비판할 수 없을 정도의 각별한 관계는 기자에겐 좋지 않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