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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동차, '신화 시대'는 끝났는가

[위기의 한국 자동차산업] <1> 도요다의 '가이젠 신화'와 GM대우의 '협력 신화'

"새해에도 환율하락, 내수감소, 노조파업이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의 자동차산업은 붕괴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학회의 유지수 회장이 지난달 22일 한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한국자동차산업은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5대 자동차대국을 향해 질주하는 것처럼 비치던 불과 일년 전까지와는 180도 달라진 삼엄한 분위기다.

실제로 자동차 메이커들의 실적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눈에 띄게 악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올해 목표를 지난해보다 소폭이나마 높여 잡았으나 만만치 않은 목표로 보인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 견해다. 특히 우리의 추격목표였던 일본 자동차메이커들의 해외수출시장은 물론, 한국시장에 들어와서까지 대약진을 거듭하는 것과 대조가 돼 한층 우려를 크게 하고 있다.

당연히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찾는 진단이 계속되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단연 '원고(高)'다. 지난 2001년까지만 해도 1천2백원선이던 달러 대비 원화환율이 요즘은 9백원 유지까지 의문시되고 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의 경우 "달러화에 비해 원화가 1원씩만 강세가 돼도 1백억원의 매출 차질이 발생한다"고 환율쇼크의 가공스러움을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과거엔 같이 오르고 같이 내리던 엔화가 요즘은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 지난 2004년까지만 해도 1백엔당 1천원선이던 원화환율이 요즘엔 7백원선까지 급락했다. 일본 자동차업계는 가만히 앉아서 우리 자동차업계에 대해 20~30% 가격경쟁력이 생겼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국제시장에선 마치 지붕위로 날아오른 닭을 쳐다보듯 일본자동차의 도약을 멍하니 바라보는 신세가 됐고, 철옹성 같던 국내시장에서도 '렉서스 돌풍'에 전율해야 하는 안팎 곱사등이 신세가 됐다.

달러화한테 얻어맞고 엔화한테 짖밟히는 형국이다.

'포니 신화'를 자랑스러워 하던 국민들이...

노사관계는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연례행사처럼 해마다 평균 한달씩 되풀이되던 자동차 노사분규는 연초 현대차 시무식 사태로 정점에 달했다. 인터넷상에서 자발적으로 현대차 불매운동이 벌어질 정도로 국민의 분노와 허탈감은 컸다.

그래도 지난 수십년간 '포니 신화'를 자랑스러워해온 국민들이었다. 생전에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딱 하나 부러워한 게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일군 '자동차 산업'이었다.

자동차는 "달리는 쇼윈도우"다.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한다는 것은 여느 제품 수출과 의미가 다르다. 전세계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나라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때문에 자동차를 수출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다른 제품들도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이미지를 외국 소비자들에게 심어준다. 자동차를 "달리는 쇼윈도우' "달리는 국가 광고판"이라 부르는 것도 당연하다. 고 이병철 회장은 현대보다 먼저 자동차산업을 하지 못한 걸 안타까와했고, 이건희 회장이 IMF위기의 와중에도 그렇게 끝까지 자동차산업에 집착했던 것도 선친의 유지 때문이었다.

이처럼 국민들이 수십년간 자랑스러워 했고 경쟁자들도 부러워했던 한국의 '포니 신화'가 밑둥째 흔들리는 위기를 맞고 있으며, 그 핵심 원인 중 하나가 지난해에만 2조6천7백억원의 매출 차질을 빚은 노사갈등인 것이다.

수출을 위해 선착장에서 대기중인 자동차들. ⓒ연합뉴스


도요다의 '가이젠 신화', 그리고 GM대우의 '협력업체 신화'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말하면서 최근 벤치마킹 대상으로 자주 거론되는 게 일본의 도요다 자동차다. 욱일승천을 거듭하는 도요다는 올해 GM을 제치고 '세계 넘버원' 자리를 쟁탈할 게 확실시되고 있다.

도요다는 우리에게 여러모로 벤치마킹 대상일 수밖에 없다. 도요다는 80년대 중반 이른바 '플라자합의'로 엔화가치가 두배나 폭등했을 때도 살아남고 이를 계기로 도리어 도약했다. 원고 위기에 직면한 우리 자동차업계에 더없이 필요한 노하우가 아닐 수 없다.

도요다의 생존비법은 무엇인가. 흔히들 '가이젠(改善) 신화'를 말한다. '가이젠 신화'란 자동차의 품질, 즉 '제품 경쟁력' 재고로 엔고에 따른 '가격 경쟁력'의 붕괴를 돌파한 기적적 생산력 제고를 의미한다. 도요다의 '가이젠 신화'를 가능케 한 것은 노사협력 뿐 아니라 협력업체와의 공존이었다. 자동차는 수십만게 부품의 결합체. 따라서 협력업체가 동반자가 되지 않고선 협력이 불가능하다. 도요다는 이것을 해낸 것이다. 협력업체가 생산력을 끌어올리면 그 반대급부를 혼자 독식하지 않고 공유함으로써 오늘날의 도요다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거액을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한국 중소기업들을 발굴해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외국계펀드매니저는 "한국자동차업체의 치명적 맹점은 세계적 협력업체이 없다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현대차 등 한국의 자동차메이커가 세계 10위권 안에 들었으면 한국의 자동차 협력업체도 세계 10위권안에 든 업체들이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투자를 하고 싶어도 그럴만한 협력업체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동차메이커들이 평균 7~8%대 수익만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 이상 수익을 올리면 부품공급가를 낮춰 이윤을 빨아들이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경쟁메이커로의 부품 공급도 차단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협력업체들 가운데에는 이윤을 숨기기 위해 분식회계를 하는 기업들도 나타난다. 이렇게 수익성도 낮고 회계장부도 투명치 않다 보니, 투자를 하고 싶어도 투자를 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 등 한국의 조선업계가 일찌감치 독립적 외주시스템을 완성시켜 협력업체들이 현재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한국의 조선업체가 일본 등의 추격 등 치열한 국제경쟁속에서도 독주를 거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요즘 잘 나가는 'GM대우'의 경쟁력의 근원도 여기서 찾았다.

"GM대우가 요즘 정말 잘 나간다. 파산직전의 GM을 먹여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GM대우가 잘 나가는 데에는 GM도 갖고 있지 못한 소형차로 중국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등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되는 한가지는 부도난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GM이 선진적 협력업체 시스템을 도입한 데 있다.

일찌감치 글로벌 경영네트워크를 구축한 GM은 대우자동차 인수후 GM대우의 협력업체에 가해졌던 기존의 모든 장애를 거둬냈다. 협력업체가 10% 수익을 올리든, 20% 수익을 올리든 개입하지 않았다. 협력업체가 다른 국내외 경쟁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는 것도 막지 않았다. 협력업체가 튼실해져야 GM대우 자동차의 질도 높아진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위기의 한국자동차 산업이 살길은 단 하나다. 도요다의 '가이젠 신화'와 GM대우의 '협력업체 신화'를 철저히 배우는 것이다. 세계 10위권안의 협력업체들을 키워내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한국자동차산업뿐 아니라, 크고작든 동일한 위기구조에 노출된 한국경제의 살 길이기도 하다."
박태견 기자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4 4
    보험처럼

    자동차값을 수십프로 올려
    분양가 수십프로 올릴때 제조업 경쟁력은
    종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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