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이 과연 정계에 일대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인가. 단언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명박-박근혜 지지율보다 한나라당 지지율 타격 예상
손 전지사 탈당은 분명 한나라당에 타격이다. 그는 탈당하며 한나라당을 "개혁 불능의 수구보수 정당"으로 규정했다.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도 "구태 정치세력"으로 규정했다. 한나라당 전체로 보면 이미지 악화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명박-박근혜 지지율이 곧바로 타격을 입을지는 미지수다. 이-박 지지층은 평소 손학규 전 지사에 대해 무관심했던 유권자들이기 때문이다. 손 전지사가 탈당했다고 그에게로 지지를 옮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구보수'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진 대목은 아픈 대목일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한반도 해빙이 강타하면서 일반 국민들 사이에 이같은 의구심이 생겨나던 마당에 발생한 '사건'이라 아플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명박-박근혜 캠프는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지지율에는 변화가 없겠으나, 한나라당 지지율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범여권 정계개편 기록제될까, 한미FTA 등 놓고 이견
손 전지사 탈당의 최대 관심사는 그로 인해 정계개편이 가속화될 것인가이다.
손 전지사 탈당 결심에는 소설가 황석영씨가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 1월 3년간의 외유를 마치고 귀국한 황씨는 손 전지사에게 탈당을 강권하며, 시인 김지하, 이부영 전의원 등의 상생모임과, 최열 환경운동재단 이사장 등의 미래구상과 협의를 가졌다. 이들 단체들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비판적이면서도 한나라당에도 비판적인 진보 재야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향후 이들이 손 전지사 정치활동의 주요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문제는 범여권이다. 이미 탈당을 단행한 민생정치모임이나 통합신당모임 등은 손 전지사 탈당에 환영 입장을 밝혔다. 열린우리당의 김근태-정동영도 마찬가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들이 쉽게 결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예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경우 손 전지사는 적극 찬성이다. 반면에 천정배-김근태-정동영 등은 반대다. 특히 김근태-정동영은 한미FTA를 열린우리당 탈당의 명분으로 사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낳고 있다. 과연 이같은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현재로선 해법이 없다.
한미FTA 찬성 같은 손 전지사의 시장주의적 입장은 다른 시민사회세력과의 연대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따라서 손 전지사의 향후 정치기반은 생각보다 협소할 수도 있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손학규, 정운찬-진대제에 러브콜 보냈으나...
손 전지사는 이런 한계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동시에 시민사회단체와의 결합이 큰 힘이 안된다는 판단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민사회단체의 대국민적 영향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손 전지사가 대신 대안으로 생각하는 게 앞서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는 정운찬 전서울대총장, 진대제 전 정통부장관과의 '드림팀' 구성이다. 손 전지사는 19일 탈당 기자회견에서도 이들에게 재차 "드림팀을 함께 만들자"는 러브콜을 보냈다.
환상의 경제 드림팀을 만들어 이명박 전 서울시장 등과 전선을 짜자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이명박 신드럼의 근원인 '경제 메리트'를 희석시키는 동시에, 연말 대선에서 대반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손학규 경기지사와 정운찬 서울대총장이 각자 공직재임시절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향후 두사람의 역학관계가 정가의 새 변수로 등장한 양상이다. ⓒ연합뉴스
문제는 정운찬 전 총장 등의 반응이 아직은 시큰둥하다는 점이다. 정 전총장은 본지와 만나 손 전지사의 '드림팀 제안'에 대해 "같은 서울대 출신에다가 옥스포드대(손학규), 프린스턴대(자신), 매사추세츠대(진대제) 등 외국 명문대학 출신들이 함께 모이는 게 꼭 좋아보이지는 않는다"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엘리트들의 연맹'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지적인 셈.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론 서로 경제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대응에서 큰 차이가 있어 3자결합이 내용적으로 적합치 않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손 전지사는 신자유주의에 찬성하는 입장인 반면에, 정 전총장은 뉴 케이즈언으로 정부가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전총장은 이밖에 진대제 전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의 신뢰가 두터운 친노세력이란 점에도 적잖은 거부반응을 갖고 있어, 손 전지사가 제안한 '3자 연합'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전총장도 손 전지사 탈당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등, 손학규 탈당이 정계개편을 가속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란 게 지배적 관측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손 전지사 탈당은 그동안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범여권에 '제3지대 신당' 창당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등 상당한 자극제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자극이 곧바로 현재의 한나라당-이명박 압도세를 뒤엎을 만한 거대 충격으로 작용할 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그만큼 범여권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지지율이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할 정도로 국민적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