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손학규 전지사를 밀고 있는 친노 출신 정봉주 의원은 대선출마설이 본격적으로 나돌기 시작한 조순형 통합민주당 의원의 '파괴력'을 일축했었다.
정 의원은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 인터뷰에서 "조순형 의원은 대선출마선언을 했는데 유시민 의원같은 경우는 대선출마선언하지 않아도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에 나온다. 그런데 조순형 의원같은 경우 지지율에 별로 나오지 않다"고 말했었다.
그는 조 의원이 손 전지사에게 이번 대선을 쉬라고 주문한 데 대해서도 "(대선에) 참여하면서 좀더 강력하게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 1등 하고 있는 후보를 공격했다, 이렇게 이런 차원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며 "별 영향 없을 거라고 본다"고 일축했었다.
'조순형 변수'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26일 조 의원이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하면서 범여권 분위기가 달라졌다. 특히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범여권후보 선호도에서 조 의원이 내로라하는 범여권 대선주자들을 제치고 단박에 손학규 전 지사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면서 분위기가 초긴장으로 바뀌었다.
26일 조순형 의원 대선출마 선언식때 박상천 통합민주당 대표는 "좋은 소식을 전하겠다. 조순형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범여권 후보 선호도 2위에 올랐다”며 이날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를 전했고 이에 행사장에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나왔다. 박 대표는 “오늘 출마선언으로 후보 여론조사에서도 높은 지지를 실현할 날이 머지 않았다”며 “조 후보의 좋은 점을 부각시키고 다른 후보 좋은 점도 부각시켜서 12월19일 대선에서 반드시 대선에 당선되도록 적극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이인제, 김영환 등 다른 통합민주당 대선주자들도 조 의원을 격찬하며 조 의원과 함께 통합민주당 독자후보 경선에 끝까지 참여, 페어플레이를 할 것을 다짐했다.
26일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있는 조순형 통합민주당의원. 정치권이 '조순형 변수' 출현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초조해하는 열린당, 여유 되찾은 통합민주당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범여권에 초비상이 걸렸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은 2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개혁진영의 후보를 뽑는 2개의 리그가 만들어져서는 안된다"며 "대통합의 단일리그가 있어야 하고, 그럴 때만이 대선승리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조순형 변수'가 출현하면서 범여권대선후보 선출이 '양대 리그'로 쪼개질 게 확실해진 데 따른 위기감의 표출이었다.
그러나 통합민주당 분위기는 '마이웨이'다. 대거탈당 쇼크에서 벗어나 여유를 되찾은 분위기다.
이상렬 통합민주당 의원은 27일 오전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와 인터뷰에서 "조순형 후보는 반노(反盧)적 이미지, 또 원칙과 소신을 지켜온 깨끗한 정치인으로 국민들에게 각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조순형 후보가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와 성원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한다"며 범여권을 힐난하기 시작했다.
이 의원은 이어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를 거론하며 "손학규 전 지사나 다른 여러 후보들은 그 동안 수년에 걸쳐서 대통령후보가 되겠다고 국민들을 상대로 여러 가지 정책도 제시하고 활동을 해 왔다"며 "그러나 조순형 후보는 전혀 그런 계획이 없다가 최근에 들어와 위기에 처한 국가와 민주당을 구하겠다고 해서 출마를 선언을 했는데, 선언하자마자 그렇게 높은 지지율이 나온 것은 앞으로 시간이 가면서 조순형 후보의 지지가 상당히 아주 높아질 것으로 추측을 가능케 하고 결국은 조순형 후보도 중도개혁 세력의 유력한 주자로 부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조 후보가 범여권의 단일대선후보로도 뽑힐 가능성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런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결국은 앞으로 민심, 국민들이 조순형 후보에 대해서 그렇게 지지를 보내줄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조순형 후보가 범여권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차지할 경우 비록 의석 9석에 불과한 통합민주당이 향후 열린당 잔류세력까지 합류할 경우 1백30여석의 의석으로 다시 제1당이 될 게 확실한 범여권신당을 흡수하겠다는 야심찬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골리앗을 잡겠다는 다윗의 야심 표출인 셈.
통합민주당 "범여권은 죽어도 반노 못할 것"
통합민주당은 이번 대선의 주요전선중 하나가 '반노'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온갖 파문을 불러일으킴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압도적 지지를 받는 미스테리의 근원도 바로 '반노'에 있다고 보고 있다. 통합민주당은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주도하는 대통합신당은 죽어도 '반노'로 갈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반노의 대명사인 조순형 의원이 단박에 범여권선호도 2위를 차지한 근원도 '반노'에 있다는 게 통합민주당 분석이다.
통합민주당 구상대로 향후 대선판도가 전개될 지는 미지수다. 아직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김대중 전대통령이 노골적인 대통합신당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DJ가 전면에 나설 경우 상당 부분의 호남표는 범여권후보쪽으로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종필 통합민주당 대변인은 그러나 "DJ의 정치권 영향력은 막강하나 민심 영향력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아들 김홍업을 고향인 전남 무안-신안에 출마시킨 뒤 동교동 가신이 총출돌하고 막판에 이희호 여사까지 가세했음에도 간신 8%포인트 차로 이긴 것만 봐도 DJ 영향력은 크게 사그라들었다는 게 통합민주당측 주장이다.
민노당 "조순형 출마는 민노당에게 플러스 요인"
간과해선 안될 대목은 민주노동당 반응이다.
민노당의 고위관계자는 '조순형 변수' 출현에 대환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조순형 출마로 범여권은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며 "조순형 의원이 현재 도토리 키재기 싸움을 하고 있는 범여권 대선주자들을 제치고 보수성향의 범여권 후보 1위가 된다면 그 순간 범여권 신당 구상은 붕괴되고 말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그렇게 되면 최대 수혜자는 한나라당이 되겠지만 민노당도 상당한 반사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며 "갈 곳을 잃은 진보적 유권자들이 민노당 지지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어차피 애매모호한 중도통합을 외치는 열린우리당이나 범여권은 한나라당과 별반 차이 없는 보수"라며 "차라리 차제에 한국정치권에서 회색지대를 없애는 게 큰 흐름에서의 정치발전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