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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 강한 손창익씨를 투신케 했나

<현장> 실명 극복하고 가난한 이웃 위해 무료안마 봉사

시각장애인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따라 90년 가까이 유일한 생계유지 방편이었던 안마업계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인 시각장애인들의 절규는 결국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항상 자신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경로당, 복지회관, 교회를 찾아다니며 무료안마 활동을 통해 주변을 챙겨왔던 고 손창익(42)씨의 죽음은 헌재의 ‘안마업종에 대한 시각장애인 독점 위헌 판결’이 향후 시각장애인들에게 미칠 공포스런 파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한강 둔치 절규하는 시각장애인들

손씨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가 도착하기로 했던 5일 오전 11시 30분경 서울 마포대교 아래 한강둔치는 손씨의 죽음을 비통해하는 3백여명의 시각장애인들이 모여있었다.

대한안마사 협회 회원을 비롯해 서울맹학교의 후배들, 시각장애인 가족들은 "안마업권 회복,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며 쉴새 없이 규탄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손씨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삼삼오오 몰려들었지만, 그러나 결국 고인은 이들을 만나보지 못한 채 벽제 화장터로 향해야 했다. 이틀간 빈소를 지켰던 동료 안마사들은 유족들이 합의했던 한강둔치 노제를 경찰이 원천봉쇄했다고 반발했다.

이들에 따르면 금천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이 4일 오후 서울 구로구 독산동 아카시아 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 찾아와 가족들을 회유했고, 결국 노제를 취소하고 경찰의 호위 아래 벽제 화장소로 향했다는 것이다.

빈소를 지켰다는 동료안마사 최모(46)씨는 “오늘 아침에 수백명의 전경이 투입돼 동료안마사들의 빈소 출입을 제한하는 사이 시신은 영구차도 아닌 응급차에 실려 벽제로 향했다”며 “우리는 지난 며칠간 함께 투쟁했던 동료을 애도하기 위해 노제를 기획한 것인데 경찰은 우리 앞 못보는 장애인들을 마치 폭도 취급하고 있다”며 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들은 “경찰이 도망치듯 시신을 싣고 화장터로 향했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정부가 대책을 내놓을 때까지 목숨을 내건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며 오후 5시 한강둔치에 빈소를 마련하고 추도식을 거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포대교 15미터 아래 교각에서 위태롭게 매달려 8일째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대한안마사협회 경기도 지부 회원들.ⓒ최병성


성실하고 의로웠던 한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죽음

죽은 손창익(42)씨는 지난 29일부터 한강대교 둔치 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해 적지 않은 동료들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손씨와 함께 집회에 참석했던 동료 안마사들의 말에 따르면, 손씨는 집회에 참가한 내내 혼잣말로 “맹학교에서 안마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우리 후배들은 이제 어떻게 먹고 살아야 되나”라고 중얼거리며 비통해했다.

동료 안마사 최씨는 “선천실명이 아닌 중도실명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자살하는 경우가 선천적 장애인들보다 훨씬 많다”며 "그러나 중견기업의 회사원이었던 손씨는 이 모든 고비를 넘겨내고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해 냈다"며 그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규정했다. 손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탄탄한 중견기업에서 일해왔지만 시력을 잃은 이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재생의 길을 찾아왔다.

그를 가르쳤던 서울 맹학교의 한 교사도 그를 “매우 강직했고 정의로운 성격으로 사회적인 이슈들을 접할 때마다 한숨을 쉬며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걱정했던 학생”이라고 기억했다. 그는 “손씨는 1년 반 넘게 맹학교를 다녔지만 졸업 6개월을 앞두고 자신이 생각하는 길을 스스로 걷겠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사회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고인은 평소 조용한 시골로 내려가 농사도 짓고 흑염소도 키우면서 자신의 장애가 특별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날 한강대교에는 대한안마사협회, 한국시각장애인협회 회원들과 가족, 그리고 각 지역 맹학교 학생들이 참석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최병성


하지만 손씨의 바람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개인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꿈꾸던 삶을 모색했지만 결국 그는 2년 뒤에 다시 대한안마사협회 부설 안마수련원을 찾게 된다. 그리고 2년간의 교육 끝에 안마자격증을 취득하고 5천5백18명의 시각장애인 안마사 중 한 명으로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

항상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돋보였던 손씨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남을 위해 베푸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서민들이 모여사는 시흥 임대아파트에 살던 그는 주말이면 교회에 나가 가난한 신경통환자들에게 무료안마 활동을 해왔고 중풍, 치매노인들과 독거노인들이 생활하는 복지관이나 경로당을 찾아 꾸준히 봉사해왔다.

하지만 지난 25일 비시각장애인들이 청구한 안마사법 위헌 소송이 받아들여지면서 성실하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왔던 손씨의 삶은 시력을 처음 잃었던 20년 전 그때만큼이나 깜깜해졌다.

수십년의 방황끝에 어렵게 얻은 안마사 자격증이 더 이상 그를 사회와 연결해주는 고리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졌고, 교육현장에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의 삶을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혀온다 했다.

4일 오전 그는 결국 방 두칸짜리 임대아파트를 나서 복도 밖으로 몸을 내던지고 말았다. 헌법재판소 8명의 대법관 중 7명의 합의를 통해 내려진 ‘안마사법 위헌’ 판결의 후폭풍은 끝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또한 고인과 같은 처지의 5천5백여 시각장애 안마사들도 같은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90년간 유일한 생계수단 빼앗긴 그들의 막막함

헌재의 위헌 판결에 시각장애인들이 자살을 할 정도로 절망하는 이유는 90년 가까이 독점권을 부여한 현행의 제도 외에 실효적인 복지대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위헌판결을 내린 헌재 재판관 7인의 이름을 각각 호명하며 '맹인 7적'이라고 부르면서 격앙된 감정을 쏟아냈다.ⓒ최병성


시각장애인들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14년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스포츠마사지 열풍이 불어오면서 그동안 독점권을 인정받던 시각장애인들의 일터가 위협받기 시작했다.

현행 보건복지법, 의료법은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직업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현행법상 시각장애인 이외에 어떤 형식으로든 안마를 직종 삼아 활동하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비시각장애인 안마사는 1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마저도 정확한 통계가 아니라 관련 협회의 집계에 따른 것으로 그 수는 매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이같은 불법적인 비장애인 안마사의 급증은 결국 정부가 관리감독을 허술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대한안마사협회 한 관계자는 “더 이상 불법 유사의료행위자로 남을 수 없어 헌재에 위헌을 청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수년간 1백만명 가까운 현행법상 불법 안마사들의 불법을 정부가 묵인해 왔기 때문”이라며 “결과적으로 이같은 상황은 정부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각장애인들은 정부의 안마업 보호는 외국의 '유보고용'처럼 장애인의 생존권, 경제활동 보장에 사실상 전무한 대책으로 일관하는 정부가 유일하게 시행하고 있는 대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보고용은 일정한 직종을 지정해 그 직종에 대해서는 특정 장애유형의 장애인을 우선적으로 고용토록 하는 제도로 중증장애인에게 직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미국은 시각장애인의 유보직종으로 연방정부 및 주정부, 공공기관내의 자판기, 카페테리아 운영권을 우선 분양하고 있고, 캐나다도 마찬가지로 자판기 우선분양권을 시각장애인에게 할당하고 있다. 이밖에도 대만과 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에서는 안마업을 유보직종으로 정하고 있고 특히 일본에서는 시각장애인의 고용 의무를 부과해 각 병원, 진료소의 지압과 안마 종사자 중 70%를 우선 고용토록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영국과 스웨덴의 경우 복권판매업, 승강기 안내원, 주차안내원, 전화교환원 등 특정직종에 한해 장애인 고용을 의무화하거나 운영권을 넘겨 자활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고용촉진법에 따른 장애인 우선 고용 혹은 일정 고용에 따른 정부지원대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실제 장애인 고용 비율은 크게 신장되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조차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을 지키지 않는 곳이 허다하고 민간기업의 경우 정부의 세제지원보다는 비장애인 인재 고용을 선택해왔다.

게다가 정부의 세제지원이 절박한 영세.중소기업의 경우 주로 숙련공을 필요로 하는 업계 특성상 현실적으로 장애인고용촉진법은 장애인의 고용확대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평가다.

위헌 판결 이후, 후속 대책은 있었나

지난달 29일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안마사 정모(41)씨는 “안마사라는 직종은 비장애인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쉽게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다”라며 “시각장애인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안마업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마사 말고 다른 할 일이 주어진다면 굳이 안마업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주변에도 일반 기업에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몇 번의 도전 끝에 실패하고 나면 다시는 쳐다도 안 보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의 위헌 판결은 시각장애인들의 상실감을 악화시키고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되어버렸다. 안마사 자격증 취득만이 유일하게 현실적인 미래였던 전국의 14개 맹학교 학생들과 그의 가족들이 거리로 나섰고 5백여명에 달하는 시각장애인들이 한강대교 밑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이날 경찰은 마포대교 5차선을 통제했고 해상구조대 구조선 4척이 시각장애인들의 잇따르는 투신에 대비했다.ⓒ최병성


서울, 부산 등에서 강으로 뛰어드는 시각장애인들이 늘어나고 있고 마포대교 교각 밑에서는 8일째 장애인 6명이 격렬한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

복지부는 사태가 악화되자 뒤늦게 대한안마사협회, 한국시각장애인협회 등 유관단체와 대체입법 마련을 논의하고 있지만 기존의 ‘안마업 독점권 인정’에 준하는 대책은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안마업에 일정 정도의 고용의무 비율 부과, 공공기관의 안마, 지압사 신설 및 시각장애인 고용의무화, 새로운 보호업종 설정 등 독점권 해제에 따른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시각장애인들의 고용불안, 직업불안을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제자들과 함께 현장을 찾은 맹학교의 한 관계자는 “헌재는 90년 넘게 보호했던 업종을 자유경쟁으로 풀었지만 장애인들은 헌재 판결 자체를 부정하는 분위기”라며 “생계를 위협받게 되는 장애인들에게는 새로운 입법 마련보다 기존의 보호에 준하는 유보직종을 제시하지 않으면 사태해결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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