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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점장 "필요없더라도 제발 돈 좀 꿔가라"

<뷰스 칼럼> 2008년 11월, 세 은행의 세 지점장 이야기

A은행 지점장 "제발 돈 좀 꿔가라"

서울에서 현금이 잘도는 우량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모 대표는 최근 자신의 '희한한 경험'을 전했다.

"며칠 전에 A은행 지점장이 갑자기 돈을 쓰라고 하더라. 사내 보유 현금이 수십억원이나 돼 필요없다고 했는데도 제발 써달라고 거의 통사정이더라. 왜 그러냐고 했더니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주라고 연일 닦달인데, 돈 떼일 게 뻔한 기업들에게 해줄 수는 없지 않나. 제발 돕는 셈치고 대출 좀 해가라'고 하더라."

이 대표는 "지점장 말이 자신의 은행에 할당된 중소기업 대출금이 3천억원인데 소화할 곳이 없어 걱정이라고 하더라"며 "여력 있는 중소기업에게라도 3천억만 해주면 된다는 식인데 정말로 '정부 따로, 은행 따로'라는 말이 실감 나더라"고 했다.

A은행 임원에게 "이런 말을 들었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는 "다 그럴 리야 있겠냐"면서도 "지점장 중에는 그렇게 하는 수도 있을듯 싶다"고 했다.

그는 "지금 대출은 지점장 맘대로 못하고 본점의 심사시스템이 하게 돼 있다"며 "이런 마당에 해주고 싶은 기업이 있어도 해주기 어렵고, 설령 정부 말대로 지점장이 자신의 전결로 대출해줬다가 돈을 떼이면 자신이 책임을 지고 옷을 벗어야 하는데 정부 지시대로 지점장들이 따르겠냐"고 반문했다.

B은행 지점장 "5년후 은행은 골병이 들 거다"

B은행 지점장은 요즘 채권 팔러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B은행이 BIS 비율을 높이기 위해 발행한 은행채를 팔러다니고 있는 것이다. 채권 판매 실적이 연말 승진인사에 반영된다 하니, 목숨 걸고 뛰고 있다.

요즘 들어서는 대학들을 집중적으로 찾아가고 있다. B은행이 발행한 후순위채는 만기가 5년. 그러다 보니 당장 한 푼이라도 현금을 더 쥐고 있으려는 기업들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대학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있다. 많게는 수천억씩 현찰들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대학에는 서로 돈을 끌어가려는 은행들과 농협 관계자들로 바글거린다.

B은행 지점장은 채권을 팔려 동분서주하면서도 앞으로 은행 걱정을 많이 했다.

"우리 은행의 후순위 금리가 7.9%다. 8% 이상 부르는 은행들도 있다. 당장 살아야 하니 이렇게 고금리로 팔고 있지만 앞으로 5년뒤 은행들은 골병이 들 거다. 예대마진은 4%포인트 이상이 돼야 한다. 그렇다면 5년 뒤 대출금리가 12%는 돼야 한다는 얘긴데, 그럴 리 있겠나. 은행은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C은행 지점장의 'K행장 회고'

경제위기의 진원지인 은행들은 요즘 거의 '동네북'이다. 여기서 깨지고 저기서 깨진다. "억울하다"는 소리도 많이 한다. "외국계가 한순간에 돈을 빼내갈지, 누가 알았나. 아니, 정부당국은 알았나"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할 말이 없다"는 자성의 소리도 나온다. C은행의 지점장은 요즘 들어 지난 2004년 정부에 밉보여 현역에서 강제로 물러난 K 전행장을 회고한다.

"2003, 2004년에 일본 은행들이 앞다퉈 돈을 꿔주겠다고 했다. 많은 은행들이 연리 1~2% 저리자금을 끌어다 주택담보대출 등을 해주면서 짭짤한 재미를 봤다. 국내외 금리차만큼 이득을 보았기 때문이다. 가만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K행장에게 '우리도 엔자금을 들여오자'고 건의했다가 한마디로 박살이 났다.

'앞으로 엔고(高)가 안된다고 누가 보장하나. 엔고가 되면 누가 책임질 건데. 제발 위험한 짓들 좀 하지마라' 야단만 호되게 맞고 물러나야 했다. 당시는 속으로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보니 원칙에 철저했던 K행장 판단이 맞았다. 그분만 계속 계셨어도 오늘날과 같은 위기를 맞지는 않았을 텐데..."

A은행, B은행, C은행 지점장 모두 '위기의 은행' 일선에 서 있는 야전군들이다. 이들은 11년전 '은행의 대학살'을 경험했기에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전율하고 있다. 이들중 살아남은 이들은 앞으로 임원도 되고 행장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할 일이 있다. 왜 11년만에 같은 재앙이 재발했는가에 대한 자성이다. 왜 'K행장'과 같이 판단하지 못했냐에 대한 반성이다. 이들 지점장외 지금 은행계 모두가 곱씹어볼 대목이다.

'오늘의 사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탁상대책만 쏟아내는 정부당국도 뼈저리게 자성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올바른 반성 위에서만 올바른 해법이 나오기 때문이다.
박태견 대표 겸 편집국장

댓글이 3 개 있습니다.

  • 20 7
    엔코

    지난 10년간 부동산 대출로 재미 마니 봤지?
    거품 마구 쳐넣어놓고
    이제와서 쇼하냐?

  • 34 14
    asdf

    현재의 집권세력으로는 가망없다-은행에 관한 아니 경제 전반에 관한 사고방식이 아날로그니까-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로 하려 하니 정부가 하는 짓마다 꼬이게 되어 있다.대통령이 은행에 명령한다고 되는 시대가 아님을 알라.차라리 그냥 가만히만 있어 줘도...

  • 26 20
    걱정

    안기부에서 곧 뒷조사들어가 저분들 불이익당하는거아네요?
    미네르바도 밝히는 정보력이면 저정도는 껌일거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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