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아 터질 때까지...", 정부 '만만디'의 속내
<뷰스 칼럼> 외국계 "한국경제는 '뱀파이어 경제'다"
"많은 사람들이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지만 환자인지 아닌지 판단도 어렵고, 당사자가 자금지원을 받고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나서지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강제로 수술대에 올려 구조조정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 4일 언론사 경제부장들과 오찬에서)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측면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10여년 전 외환위기 때와는 환자의 증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때는 (기업들이) 죽게 된 상황에서 입원해서 수술받아야만 했지만 지금은 수술보다는 통원치료로 해결할 수 있는 기업이 대부분이다."(전광우 금융위원장, 1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일부 언론에서 `3월 위기설'을 제기하고 있는데 앞서 있었던 `9월 위기설'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국민의 불안심리를 이용해 근거없이 위기를 조장하고 여기에 무책임하게 편승하는 것이야말로 국익을 해치는 일이다"(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 4일 브리핑에서)
최근 경제팀과 청와대가 드러낸 '상황 인식'이다. 아직 수술할 때도 아닌데 수술하라고 닦달하고 위기도 아닌데 위기론을 조장해, 사회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는 불만 토로다.
이헌재 "남대문 화재 참상 재현되는 것 아닌가"
이들이 불쾌감을 표명한 '위기론자'들은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 시골의사 박경철씨 등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최근 정부와 180도 다른 진단을 했다.
"요즈음 사태 진행추이는 초기 진화에 실패한 남대문 화재의 참상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마저 든다"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 11월28일 한국경제학회 강연에서)
"한국 경제는 현재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와 같다. 언제 회복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대 고비는 내년 2, 3월로 예상이 된다"(시골의사 박경철, 11월29일 출판기념회에서)
"내년 봄에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무엇보다 건설사나 신생 조선사의 부실은 이미 드러났고, 이런 문제가 철강업이나 자동차업 등으로 계속 확산되고 있고, 더 나아가 한국경제의 마지막 버팀목이라고 하는 수출도 크게 침체돼서 특히 중국시장 같은 경우엔 28% 수출이 감소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김상조 한성대 교수, 2일 라디오방송에서)
위기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경제팀이나 청와대에서 보면 기쁜 나쁜 전망들일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삼성증권은 감히(?) 국내에서 최초로 내년 경제성장률을 -0.2%로 잡고, 3월께는 원-달러 환율이 최고 1,700원까지 폭등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아 위기론에 불을 붙였다. 어쩐 연유에서인지, 삼성증권은 홈페이지에 올렸던 화제의 전망 보고서를 당일 곧바로 삭제했다.
정말 위기가 아니라 생각할까
그런데, 정말 경제팀이나 청와대는 지금 상황을 '위기'가 아닌 것으로 보고 있을까. 속내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정정길 대통령실장 발언이 지난 1일 친박계 의원들을 만나 한 말이 대표적 증거다.
"내년 2월이 되면 대졸 실업자들이 쏟아지고 3. 4월이 되면 많은 중소기업들이 부도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그 탓을) 구조적 문제로 돌리게 되면 현 정부나 체제에 대한 위협세력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청와대 경제수석실도 아닌 민정수석실이 직접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과거 강권통치시절에도 찾아보기 힘든 대응이다. 대통령이 숱하게 호통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돈줄이 꽉 막혀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청와대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고 있으나, 환자를 수술대에 올려놓고 대수술을 하기를 꺼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정을 낳는 대목이다. 정부의 최근 앞뒤 다른 얘기는 정부가 자칫 수술을 잘못했다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좀비들이 구조조정을 막고 있다"
2년전 미국발 금융위기 발발을 정확히 예견해 최고의 성가를 구가하고 있는 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RGE모니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좀비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가로막으며 신용경색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세계적으로 죽어야 할 '좀비 기업'들이 돌아다니면서 경제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힐난이었다.
루비니 교수는 더 나아가 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을 통해선 2조달러대의 손실로 서방 은행들의 자금 중개기능이 완전마비 상태에 빠져들었음을 지적하면서 "최악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내년은 경기침체, 디플레이션, 은행 파산 등으로 더욱 고통스런 해가 될 것"이라며 "다음 몇달간 거시경제 및 수익 뉴스는 예상보다 더욱 악화되고 신용경색은 더 악화되면서 몇몇 신흥국가들은 완전히 금융위기에 빠져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경제 상황이 이처럼 우리 바람과는 달리 점점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한가로이 환부가 곪아터질 때까지 '만만디' 기다릴 시간 여유가 없는 것이다.
미국 컨설팅그룹 맥킨지의 고위관계자는 몇해 전 사석에서 "한국경제는 한마디로 '뱀파이어 경제'다. 햇빛에 노출되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부실 기업과 기업주들이 대낮에는 음지에 숨어있다가 밤만 되면 활개를 치고 다닌다"고 원색적으로 한국경제 상황을 비꼰 적이 있다.
지금 한국경제는 벼랑끝 위기에 서 있다. 누가 좀비이고, 뱀파이어인지는 국민들도 다 안다. 이들에게 은행 등을 짓눌러 신규자금 대출을 해줘봤자 밑빠진 독 신세가 될 것이란 것도 다 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도, 은행도 과감히 환부를 도려내기 위한 대수술을 겁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과의사가 메스를 들기 겁낸다면 가운을 벗어야 한다. 지금이 그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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