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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의 한가닥 희망, '이준구 쇼크'

"한국에는 왜 '아니꼬운' 리무진 리버럴조차 없나"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관되게 종합부동산세 무력화에 반대해온 지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교수가 11일 밤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전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오늘 아침 종부세를 내고 왔지만, 이번처럼 내기가 싫은 적이 없었다. 나와 똑같은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내지 않는 세금을 나만 내야 하는 불공정성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이 교수도 '종부세 대상자'였던 것이다. 종부세 대상자이면서도 헌법재판소 판결까지 질타할 정도로 종부세 무력화에 그토록 반대했다니...'지성의 힘', '양심의 힘'이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교수는 글에서 우리사회 부유층에 이런 쓴소리도 던졌다.

"미국에서는 상속세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에 가장 먼저 반대하고 나선 것이 빌 게이츠나 워렌 버펫 같은 부자였다. 상속세를 폐지하면 가장 이득을 볼 사람들이 먼저 반대하고 나서니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을 존경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게 된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부자들의 모습은 어떤가? 우리나라의 게이츠나 버펫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상속세 몇 푼 덜 내려고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는 요령이나 부려왔을 뿐이다. 미국 사회가 왜 늘 튼튼하고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지에 대해 궁금해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이 교수는 미국 사회에 나도는 "리무진 리버럴(limousine liberal)"이란 용어를 소개했다.

그는 "자신은 리무진을 타고 다닐 정도로 화려한 생활을 하면서 없는 사람을 위해 주는 척하는 모습이 우습다는 뜻이 담긴 별명이다. 한 마디로 말해 그들은 위선자라는 뜻에서 그런 별명을 붙인 것이다. 실제로 미국 진보진영의 면면을 보면 보수진영 못지않게 부유한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부자들이 진보적인 정책을 지지하는 것을 아니꼽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아니꼬운’ 모습조차 찾아보기 힘들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는 밥술이나 뜨는 사람 중에서 진보적 이념을 지지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비단 종부세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적 이슈와 관련해 우리 사회의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이해관계에서 한 치도 벗어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교육이나 의료제도 문제도 돈 있는 자기들에게만 유리한 구도를 주장할 뿐 가난한 사람들과 공평하게 기회를 나눠 갖는 방안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다"고 꾸짖었다.

그는 종부세 논란과 관련해서도 "상당수의 리무진 리버럴들이 있어 부유한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일종의 명예라는 올바른 목소리를 냈어도 결과가 크게 달라졌으리라고 믿는다"며 "종부세 내는 사람들이 단 한 치도 양보하려 들지 않고, 정부가 막무가내로 이들의 손을 들어준 탓에 지금의 상황이 빚어진 것"이라고 개탄했다.

이 교수의 걱정은 '앞으로'다. 그는 종부세 무력화로 '2 대 98'로 비유되는 한국사회의 계층적 갈등이 극으로 치달을 것을 우려했다.

"종부세 논쟁은 상위 2%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이들이 무지의 장막을 걷어내고 자신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주장한 결과 이런 승리를 거두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슈와 관련해서는 또 다른 집단의 사람들이 그들과 똑같이 무지의 장막을 걷어내고 자신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상위 2%의 사람들도 전혀 양보를 하려들지 않는데 그들보다 가난한 우리가 왜 양보를 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게 틀림없다. 종국에는 사회의 모든 계층이 한 치도 양보하려 들지 않는 극도의 혼란이 빚어질지도 모른다."

"이번 종부세 논쟁에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계층에 있는 사람들만이 보인 행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나는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우리 사회가 계층간 갈등의 불안정한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모든 것의 책임이 그들과 그들을 일방적으로 편들어준 정부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무지의 장막

이준구

분배와 관련된 정의의 논의에서 최고의 권위로 인정받는 롤즈(J. Rawls)의 이론은 원초적 상황(original position)이라고 불리는 가상적 상태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이것은 아직 아무런 사회질서도 세워져 있지 않은 원시의 상태다. 따라서 사람들은 앞으로 사회가 어떤 기본질서를 갖게 될 것인지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이들이 과연 어떤 기본질서에 합의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바로 롤즈의 정의론(正義論)이다.

롤즈는 이 원초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모두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에 가려 있다고 설명한다. 사회에서 앞으로 자신의 위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른다는 뜻에서 무지의 장막에 가려 있다는 비유를 쓴 것이다. 이런 상황을 설정한 데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의 기본질서를 논의할 때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태도를 갖게 만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자신이 어떤 사회적 위치를 차지할지 알고 그 입장에서 발언하는 사람이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태도를 취할 리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적 이슈든 간에 이런 가상적 상태에서 출발할 수 있다면 공정한 해결책을 찾는 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편협한 이해관계를 초월해 허심탄회한 자세로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이기 때문이다. 근시안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머리를 짜내 보았자 공정한 해결책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롤즈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편협한 이해관계를 초월하지 못하는 한 공정한 사회질서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요즈음 종부세와 관련된 논란을 보면서 롤즈의 정의론을 또다시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공정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을 느낀다. 내가 그 동안 만나본 사람들 중 종부세를 내면서 종부세제도를 지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업가든, 교수든, 공무원이든 직업과 관련 없이 종부세가 얼마나 나쁜 세금인지를 침이 마르도록 얘기하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종부세를 내지 않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종부세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종부세제도가 무력화되면 당장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애국심이 유달리 강해서 세금 내는 것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워낙 동정심이 강해 종부세 내는 부자들이 애처롭게 보여 그런 것일까?

그 어느 쪽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부세가 무슨 세금인지, 그것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보수언론이 종부세는 이래서 나쁘다 저래서 나쁘다는 기사로 도배를 하니 세뇌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여간 심지가 굳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일방적 선전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종부세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얘기해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종부세에 관해 공정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가능한 일이다. 그 논의가 언제나 종부세는 무조건 나쁘다는 식으로 흐르고 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종부세 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논의가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는 너무나도 뻔한 게 아닌가? 공정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롤즈가 말하는 무지의 장막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슈에 관해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태도를 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마치 그 장막에 가려진 상태인 것처럼 느껴야 한다는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종부세를 낸다는 사실을 잊어야만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말이다. 건전한 시민 혹은 지식인이라면 의당 갖춰야 할 자세로서 무지의 장막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종부세를 내는 사람들 중에는 많은 지식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사회 지도층’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편협한 이해관계의 포로상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종부세에 관한 공정한 해결책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은 편협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남들에게는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자세를 가지라고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공정한 사회질서를 이룬다고 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힘든 일이다.

미국 사회에서 일부 진보진영의 인사를 비꼬아 부르는 별명으로 ‘리무진 리버럴’(limousine liberal)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은 리무진을 타고 다닐 정도로 화려한 생활을 하면서 없는 사람을 위해 주는 척하는 모습이 우습다는 뜻이 담긴 별명이다. 한 마디로 말해 그들은 위선자라는 뜻에서 그런 별명을 붙인 것이다. 실제로 미국 진보진영의 면면을 보면 보수진영 못지않게 부유한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부자들이 진보적인 정책을 지지하는 것을 아니꼽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아니꼬운’ 모습조차 찾아보기 힘들까? 우리 사회에서는 밥술이나 뜨는 사람 중에서 진보적 이념을 지지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비단 종부세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적 이슈와 관련해 우리 사회의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이해관계에서 한 치도 벗어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교육이나 의료제도 문제도 돈 있는 자기들에게만 유리한 구도를 주장할 뿐 가난한 사람들과 공평하게 기회를 나눠 갖는 방안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다.

미국에서는 상속세를 폐지 움직임에 가장 먼저 반대하고 나선 것이 빌 게이츠나 워렌 버펫 같은 부자였다. 상속세를 폐지하면 가장 이득을 볼 사람들이 먼저 반대하고 나서니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을 존경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게 된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부자들의 모습은 어떤가? 우리나라의 게이츠나 버펫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상속세 몇 푼 덜 내려고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는 요령이나 부려왔을 뿐이다. 미국 사회가 왜 늘 튼튼하고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지에 대해 궁금해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오늘 아침 종부세를 내고 왔지만, 이번처럼 내기가 싫은 적이 없었다. 나와 똑같은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내지 않는 세금을 나만 내야 하는 불공정성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종부세제도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 힘을 얻어 정부는 이런저런 편의주의적 손질로 종부세제도를 누더기로 만들어 놓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위헌 결정의 후속조치로 내놓은 안은 벌써부터 땜질식 처방의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다.

모든 국민이 무지의 장막에 가려진 상태로 종부세 문제를 논의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귀결을 보게 되었으리라고 믿는다. 상당수의 리무진 리버럴들이 있어 부유한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일종의 명예라는 올바른 목소리를 냈어도 결과가 크게 달라졌으리라고 믿는다. 종부세 내는 사람들이 단 한 치도 양보하려 들지 않고, 정부가 막무가내로 이들의 손을 들어준 탓에 지금의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종부세 논쟁은 상위 2%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이들이 무지의 장막을 걷어내고 자신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주장한 결과 이런 승리를 거두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슈와 관련해서는 또 다른 집단의 사람들이 그들과 똑같이 무지의 장막을 걷어내고 자신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상위 2%의 사람들도 전혀 양보를 하려들지 않는데 그들보다 가난한 우리가 왜 양보를 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게 틀림없다. 종국에는 사회의 모든 계층이 한 치도 양보하려 들지 않는 극도의 혼란이 빚어질지도 모른다.

최소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계층에 있는 사람들만은 자신의 편협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 무지의 장막 뒤에 가려지는 상태를 선택해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종부세 논쟁에서 그들이 보인 행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나는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우리 사회가 계층간 갈등의 불안정한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모든 것의 책임이 그들과 그들을 일방적으로 편들어준 정부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박태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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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9 개 있습니다.

  • 13 10
    나원참

    이준구교수를 모르다니...나원참~
    이준구 미시경제학을 모르시나보네요?..
    경제학을 공부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한권씩 사보는 바이블같은 책인데..그 인세만으로도 꽤 많은 수입원이 될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분 집안을 아는데..잘 사는 집이긴 합니다..형님이 한분, 누님이 한분 계신데..아버님이 돌아가신뒤 꽤 많은 유산을 받긴 했죠..
    그렇더라도, 정당한 과정을 거쳤고..문제될건 전혀 없습니다..
    淸貧이 칭송받듯...淸富도 당연히 인정받아야죠...

  • 7 19
    ㅡ.ㅡ

    리무진 리버럴이 왜 없어
    노무현과 민주당 있잖아. 이준구교수도 리무진 리버럴이네.

  • 25 10
    객.

    양심있는 지식인이다.
    하지만 이런분이 전체지식인에 1% 안된다고 생각한다.
    한국민이 계급적으로 이익을 챙기고, 투표할때,
    상위 1%가 지금처럼 개판치는 꼴은 덜 자행한다고 확신한다.
    살만한 나라중에 어느나라가 상위 5%와 하위 5%로 투표성향이 같은가?

  • 18 12
    한강

    힘든 시대 그나마 이런 지식인이 있다는데 위안을 삼고 싶다
    영혼을 팔아 먹는 학자 지식인들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 22 7
    444

    아래 222가 그유명한 뉴라이트 ㅋㅋㅋ
    수구핵골통-매국노 뉴라이트 ㅋㅋㅋ
    수준하고는 ....

  • 17 6
    아우리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지금 정상이 아니야
    케인지언 마저도 좌빨로 매도 당하는 이상한 나라

  • 9 18
    꼽냐

    김일성 따라하기다
    60년넘게 수백만을 굶겨죽이면서
    명품 즐기는.

  • 16 9
    티코리버럴

    틀렸다
    이 나라 98%의 천민들은 항상, 조건 없이, 기꺼이 양보만 할 것이다. 달리 천민이냐?

  • 33 9
    이런 된장~

    전국민적 납세거부 운동을 하자!
    이준구 교수의 말이 맞다.
    강부자들 지갑채워주느라 우리가 낼 수는 없다.
    이제 전국민적 납세거부 운동을 해야할 때다.
    이대로 밟힐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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