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바다이야기' 파문과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뒷전에선 아직 사행산업을 통한 세수 확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를 위해 정보조작 행위도 서슴치 않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3개 야당 의원들, 농림부 허위 조작문서 폭로
'사행산업을 걱정하는 의원모임' 소속 이계진 한나라당의원, 손봉숙 민주당의원, 강기갑 민주노동당의원은 20일 오후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합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대표적 사행성 산업인 경마의 장외발매소를 확장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 날조하여 허위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폭로했다.
문제가 된 것은 지난 2월 농림부가 경마업 수익을 확대하기 위해 장외발매소, 즉 화상경마장을 전국적으로 확대방침을 세운 뒤 3월 8일 허가를 내준 원주 장외발매소. 문제는 이같은 허가의 근거가 된 보고서가 완전조작된 내용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의원들이 이날 발표한 '농림부 사무관 허위보고서 주요 내용 및 해당 각계의 반박 입장'이란 자료에 따르면, 농림부와 한국마사회가 장외 화상경마장을 유치하기 위해 화상경마장 유치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의원들이 찬성으로 돌아선 것처럼 사실을 서슴없이 조작하고 있다.
한 예로 보고서는 "최근 마사회 측의 꾸준한 설득결과 당초 원주지역 장외발매소 설치 반대를 주도했던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유치 반대를 철회하였고 원주시민단체, 여성민우회, 환경운동연합 등 대부분의 시민단체도 장외발매소 유치에 반대하고 있지 않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들 단체는 "유치 반대를 철회한 사실이 없으며 시민단체로부터 의견청취도 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한 보고서는 "마사회장이 전직 국회의원과 수시면담을 통해 천주교 원주교구를 설득하여 반대 철회를 이끌어 냈다"고 적고 있으나, 천주교 원주교구는 "반대철회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으며 전직 국회의원도 "마사회장으로부터 원주교구를 설득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바 없고 원주교구를 설득하기 위해 누구와도 만난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
보고서는 또 "원주시 의회는 화상경마장 관련 통일된 의견이 없다"고 적고 있으나, 시 의회는 지속적인 반대입장을 밝혀왔다.
지난 3월 18일 '화상경마장 설치 저지를 위한 원주시민대책위'(상임대표 최정한)는 원주 종합운동장 광장에서 시민 1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궐기대회를 갖고 화상경마장을 강행하려는 농림부와 한국마사회를 규탄하기도 했다ⓒ연합뉴스
농림부 관계자들 검찰에 고소
특히 이계진 의원을 펄쩍 뛰게 만든 대목은 "지역 국회의원이 마사회측의 면담결과, '내가 국회내에 사행산업을 걱정하는 의원모임의 일원인 만큼 반대의사를 번복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표명하고 있으나 당초보다는 적극적인 의사표명은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구절. 문제의 '지역 국회의원'은 다름아닌 이 의원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이에 대해 "나의 입장과 의견을 완전히 허위-날조-왜곡하여 마치 찬성하듯이 내부보고하여 결정한 사실이 밝혀졌다"며 "이는 나 개인의 명예의 문제는 물론이고, 또 한편으로는 무리하고 부당한 장외발매소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정부와 담당 국가공무원이 허위-날조-왜곡을 감행한 공직기강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라고 비난했다.
이와 관련해 3인의 의원은 "농림부가 국회의원의 의견과 정책방향조차도 왜곡한 것은 단순한 허위보고가 아니라 국회의원 의정활동 방해를 넘어 공작정치에 준한다"며 "지방 세수 확보에만 눈이 먼 정부가 국민들이 도박 중독으로 죽어가는 것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비난했다.
의원들이 이날 농림부 관계자에 대한 검찰수사를 비롯해 관련 공무원에 대한 엄중 문책, 농림부 결정과정 내부 문건 공개, 원주 장외발매소 승인과정에 대한 감사원 특별감사 결과 공표, 원주 장외발매소 설치 계획중단, 사행산업 확대정책 철회 등을 요구했다.
원주-순천 시민 1천여명 21일 상경투쟁
이에 앞서 '화상경마장 설치 저지를 위한 원주시민대책위'(상임대표 최정환)는 지난 14일 박홍수 농림부장관을 직무유기 혐의로, 이주영 사무관을 공문서 위조 및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각각 춘천지검 원주지청에 고발했다.
시민대책위는 "화상경마장 승인과 관련 농림부 담당 사무관이 여론을 왜곡하고 주민동의서를 허위로 작성, 보고하는 등 공문서를 위조한 부분은 심각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며 "장관도 이를 그대로 승인해 직무유기를 했다"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한편 문제의 원주를 비롯해 현재 장외발매소가 추진되고 있는 순천의 시민들 1천여명도 함께 21일 상경투쟁을 할 예정이어서, 파문은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