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부패 정도를 비교조사하는 국제투명성기구(TI)가 한국의 고위 공직자에 대한 법 집행이 공정하고 엄격하게 집행되지 않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특히 TI는 “법원의 관대한 처벌, 형 집행중의 사면-복권 등이 부패척결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대통령의 사면복권 남용을 지적했다.
TI와 한국투명성기구(TI-Korea)는 25일 발표한 ‘2006년 한국의 반부패 시스템 실태 보고서’에서 이같은 한국의 문제점을 신랄히 지적햇다.
‘공공부문’과 ‘비공공부문’ 등 2가지 영역으로 나눠 조사된 이번 실태조사는 ▲공공부문의 경우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감사원 등을 ▲비공공부문의 경우 정당, 시민사회, 기업과 국제기구를 평가대상으로 삼았다.
국제투명성기구는 "한국의 고위공직자에게 남용되고 있는 사면-복권이 부패척결을 저해하는 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김동현 기자
TI “한국 고위공직자 사면복권 남용으로 반부패 척결에 걸림돌”
TI 보고서의 요지는 “한국의 공공부문의 경우, 전체적으로 투명성은 상당히 개선되었으나, 책임성과 청렴성은 여전히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TI는 한국 공직사회의 청렴성이 참여정부 들어 하락하고 있다며, 지난 2000년부터 20004년까지 최근 5년 동안 공무원 범죄 기소율이 52%(2000년) → 35%(2001년) → 41%(2002년) → 36%(2003년) → 38%(2004년) 등 참여정부 들어 다시 낮아지고 있는 점을 꼽았다.
특히 TI는 “고위 공직자에 대한 관대한 법집행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며 “일반 형사범의 경우 무죄 비율이 0.79%에 불과했지만, 비리에 연루된 고위공직자의 경우 7.72%로 (무죄비율이) 무려 10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은 ‘불법정치자금’, 언론은 ‘공정성’, 시민단체는 ‘청렴성’이 문제”
반면 TI는 비공공부문, 즉 민간부문의 경우 “많은 한계점이 있지만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고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줬다.
TI는 한국 기업에 있어 가장 고질적인 부패 문제로 ‘불법 정치자금’을 꼽았다.TI는 “정당, 정치인들과 연루된 불법 정치자금 사건들로 인해 정치권은 국민들의 신뢰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지배구조 및 책임경영 실천면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이룩하였으나 최근까지 불법 자금을 비롯해 비자금 조성, 분식회계, 횡령 등과 같은 기업비리는 지속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TI는 한국의 언론에 대해서도 “최근 사회 전반에서 언론의 공정성, 공익성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제고되고 있으며, 보도에 대한 윤리강령 수립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였다”고 지적했다.
TI는 시민단체에 있어서는 “공권력을 감시하는 한편 국가기관이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부패문제의 해결을 위해 앞장 서 왔다”면서도 “그러나 이제는 시민단체 자체의 거버넌스 체제 및 청렴성 유지에 대한 관심과 노력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최근 일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야기한 여러 파문의 문제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TI는 이같은 2006년 한국의 반부패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공공부문 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에 까지 견제-감시 체계의 증진 ▲엄격한 법 집행 ▲반부패기관인 국가청렴위원회 등 조사기관의 위상 강화 ▲고위 공직자 부패 전담 특별조사기구 도입 등 4가지 권고안을 마련했다.
한국 지난해 ‘부패인식지수(CPI)’ 전세계 40위 저조, 올해는 몇 등?
한편 TI가 가장 역점을 두는 세계 각국의 부패인식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 즉 각국의 공무원, 정치인 등이 얼마나 부패를 조장하는지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 정도는 다음 달 6일, 전 세계에 있는 TI 각 지부에서 일제히 발표하게 된다. 한국의 최근 부패인식지수는 세계 47위(2004년), 40위(2005년) 등으로 아직 선진국 수준에 진입하기에는 턱없는 수준이다.
TI가 ‘뇌물 성행(盛行)’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지난 1999년부터 도입해 매 2년마다 발표하고 있는 뇌물공여지수(BPI, Bribe Payers Perceptions Index)에 있어서도 한국은 하위권으로 분류되고 있다.
TI가 지난 4일 전 세계 1백여개국에서 동시에 발표한 ‘2006년 뇌물공여지수(BPI)’에서도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말레이시아 등과 함께 하위권인 제3그룹으로 분류된 바 있다. 그만큼 한국에서 뇌물이 통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지난 1993년 국가 활동의 책임성을 확장하고 국제적∙국가적 부패 극복을 목표로 출범한 TI는 현존하는 국제 비정부기구(NGO) 중 가장 권위있는 민간기구중의 하나다. 설립자 피터 아이겐(Peter Eigen)은 세계은행(IBRD)의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경제개발 프로그램 관리자로 근무하던 중 부패가 후진국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TI 설립을 계획했다.
이번 조사는 각 국의 반부패 시스템 실태조사 결과로 부패인식지수나 뇌물공여지수와 같이 특별한 수치나 순위는 없다. 보다 자세한 실태조사 결과는 한국투명성기구(ti.or.kr)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