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최재천 의원(민생정치모임)이 지난 석달간 말만 무성했을뿐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가능성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대통합'을 탄식하며 한 말이다.
도토리 지지율에도 누구도 버리지 않는 '대선 출마욕'
그가 말한 기득권이란 직접 화법을 빌면 '대선 출마욕'을 가리킨다. 열린당을 탈당했거나 탈당하려는 천정배-정동영-김근태 등 범여권 대선주자들이 이미 국민적 심판이 끝난 셈인 도토리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요행수'를 바라거나 '지분'을 생각하며 버티기를 하는 바람에 '대통합'의 단초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범여권 대선주자군의 '출마욕'이 대통합의 걸림돌이란 지적은 최 의원외에도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한 예로 '대통합 원탁회의'를 추진중인 이해학 목사는 최근 원탁회의의 주빈은 '비정치권 외부인사들'임을 분명히 한 뒤, 원탁회의 사실을 사전에 언론에 흘린 범여권 대선주자들을 공개리에 질타했다. 출마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들 기성정치인이 바로 대통합 원탁회의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지적이었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 경우도 비슷한 비판에 직면하기란 마찬가지다. 그는 탈당의 변을 통해 "불쏘시개나 치어리더가 될 용의도 있다"고 밝혔다. 듣기에 따라선 '킹'이 아닌 '킹메이커'가 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가능한 발언이었다. 그의 탈당에 큰 영향을 준 소설가 황석영씨도 27일 기자들과 만나 "마음을 비우고 제3지대를 형성하고 매진하라. 대권의 꿈을 드러내는 것보다 제3의 힘을 끌어모으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라고 권유했다"고 밝혔다. 황씨는 그러나 '대권을 포기하라는 뜻이었냐'는 질문에 대해선 "아니다. 드러난 힘보다는 자기 욕심을 버리고 진정성을 지키는 데서 잠재된 힘이 나온다는 뜻이었다"고 강력부인했다. 아직 손 전지사가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한 경기장에서 파안대소하고 있는 대선주자 김근태 전의장과 손학규 전지사. ⓒ연합뉴스
불출마 선언의 걸림돌 '오픈프라이머리'
범여권 대선후보들 및 손 전지사로 하여금 '불출마 선언'을 안하도록, 또는 못하도록 막는 결정적 요인이 다름아닌 '오픈프라이머리 다단계 통합론'이다. 이들은 '오픈프라이머리'를 신성불가침인양 말한다. 2002년의 감동과 기적을 재연하자는 '어게인 2007'인 셈.
이들은 우선 말이 통하는 정파들끼리 오픈프라이머리를 한 뒤, 막판에 몇단계 통합을 통해 반한나라당 전선을 만들어 연말 대선에서 이명박 또는 박근혜와 승패를 가리자고 한다.
오픈프라이머리를 가장 먼저 주창한 쪽은 친노진영이고, 노무현대통령이었다. 이들이 생각하는 오픈프라이머리의 강점은 막판에 반노-비노세력과 친노세력의 결합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퇴임후에도 노대통령과 친노진영에 보호막이 처지는 셈이다.
이런 오픈프라이머리에 범여권 대선주자들은 동의하고 있다. 오픈프라이머리는 밑바닥 지지율의 그들에게 지지율을 끌어올려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의 동아줄인 동시에, 탈락하더라도 그들의 '지분'을 약속해줄 수 있는 안전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범여권이 합의를 도출한 '오픈프라이머리 다단계 통합론'에 대한 국민의 차가운 시선이다. 국민들은 그 시나리오의 속내를 뻔히 알고 냉소를 보내고 있다. 오픈프라이머리의 생명선은 국민의 참여고, 국민의 감동이다. 그러나 국민은 범여권이 마련한 오픈프라이머리를 정략과 기득권 연장의 꼼수로 받아들이고 있다.
범여권의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는 한 인사가 사석에서 말했듯 "한계효용이 다한 구태의연한 시나리오"인 것이다.
국민은 '우중'이 아니다
한 범여권 대선후보는 "솔직히 노무현 정권과 한솥밥을 먹어온 나나 다른 대선후보들에게는 원천적으로 대선 출마 자격이 없고, 당선 가능성도 없음을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 그나마 있는 조직마저 흐트러져 대선과정에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선뜻 대선 불출마 선언을 못하고 있는 이유를 해명했다. "특히 대선 직후에 총선이 기다리고 있는만큼 더 그러하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범여권 대선후보 측근도 "대선후보들에게는 각자 수년간 그를 위해 헌신해온 조직이 있기 마련"이라며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이들을 내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결국 후보 단일화를 하는 과정에 이들을 배려한 정치협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덧붙였다. 과거 1997년 DJP연합때와 같은 물밑 '정치 네고'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렇듯 각 정파의 이해관계가 현실적인만큼 대통합의 앞날은 안개속이다. 더욱이 급속한 한반도 해빙, 이명박-박근혜 분열 가능성 등 여러 변수가 예상되는 만큼 대통합은 가속도를 받기 힘든 상황이다.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듯 상황 격변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다리는 이들이 적지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결코 간과해선 안되는 한가지 사실이 있다. 국민들은 그들 머리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은 더이상 그들이 공깃돌 갖고 놀듯 할 수 있는 '우중(愚衆)'이 아니다. 국민을 우중으로 여기는 시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단언컨대 대통합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