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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에게 남은 건 피눈물뿐"

<현장> 한전 본사 앞 '고 정해진 열사' 추모집회

"우리는 밤낮 억울해서 울고 땅을 치고 울고, 건설노동자의 주먹이 흐르는 눈물이나 닦으면서 그렇게 서럽게 살아왔다. 그렇게 서럽게 산다는 것이 건설노동자의 운명인가. 받아들일 수 없다. 건설노동자란 무엇인가. 다리를 놓고 건물을 세우고 전기를 생산하고 신발을 생산하고 우리 생명줄인 식량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다. 이 세상의 주인이다. 왜 이렇게 세상의 주인이 천대받고 짓밟혀야 하는가"(오종렬 진보연대 공동대표의 6일 연대발언)

한국전력 본사가 자리잡고 있는 서울 삼성동 테헤란로 4거리가 6일 민주노총 조합원 4천여명과 중무장한 경찰병력 1천8백여명으로 뒤덮혔다. 지난 10월 27일 분신 사망한 인천지역 배전업체 소속 고 정해진씨의 죽음에 대한 원청업체 한전의 책임을 묻기위해 민주노총이 대규모 상경투쟁을 감행한 것.

전국에서 모인 4천여 조합원들은 이날 오후 2시께 한전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분신사망한 고 정해진씨의 죽음을 초래한 전기건설업체들의 교섭 회피, 노조 탄압을 한전과의 불법하도급때문이라 지적하며 한전이 직접 나설 것을 촉구했다.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 차려진 고 정해진 조합원의 임시분향소.ⓒ민주노총


건설노동자 4천여명 "정해진 조합원 죽음, 부당노동행위 부른 한전에 책임 있다"

정씨의 죽음은 울산 플랜트 노조, 포항건설노조와 흡사한 독점적인 원하청 하도급 구조에서 비롯됐다. 정씨가 소속된 소속된 건설노조 전기분과는 한국전력공사 인천사업본부로부터 수주를 받아 배전 업무를 하는 인천지역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로 지난 6월부터 130일 가까이 파업을 진행해왔다.

노사는 지난 2월부터 총 10차례에 걸쳐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노사는 파업과 사측의 용역투입이라는 전형적인 갈등 상황으로 치달았다. 정씨가 죽은 날도 노조는 협력업체인 영진전업 앞에서 사측의 성실교섭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정씨를 비롯한 노조원들이 내건 요구는 '주 44시간 노동'과 '토요 격주 휴무'였다. 그나마 1년 전 어렵게 결성한 노조의 첫 단협이었다. 그러나 원하청구조에서 저가경쟁을 통해 한전이 발주한 전기공사를 낙찰받는 업체들은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원청업체 한전은 현장에 감독관을 보내 파업 중인 현장의 공사를 위해 대체근로를 강행했다. 정씨의 시신은 서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에 11일째 누워있다. 유족은 한전의 원청책임 인정과 협력업체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기전까지 장례를 미뤘다.

민주노총이 협력업체가 아닌 한전 본사 앞에서 대규모 상경투쟁을 감행한 이유다. 그러나 이날 오후 2시부터 진행된 노동자대회에 한전은 없었다. 한전 본사의 문 앞은 굳게 닫혀있었고 그 앞에는 바리케이트와 전경버스, 살수차를 동원한 중무장 경찰 병력 18개 중대 1천8백여명이 철통같이 건물을 에워싸고 있었다.

민주노총과 건설노조 조합원 4천여명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사옥 앞에서 노동자대회를 가졌다.ⓒ전국건설노조


민주노총-경찰, 강남 테헤란로 일대서 격렬 충돌

오후 4시께 본대회를 마친 조합원 4천여명 중 선두에서 한전 진격투쟁에 시작됐다. 뒤로는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산하조직 대표들과 수천명의 조합원들이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유해성을 구속하라'라고 써진 펼침막을 들었고 소복을 입은 동료 조합원 10여명이 영정사진을 들고 테헤란로를 행진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즉각 살수차에서 물대포를 쏘아대며 조합원들의 행진을 저지하기 위해 나섰고 이 과정에서 충돌이 벌어져 크고작은 부상자와 연행자가 속출했다. 집회 대오는 경찰의 저지가 계속되자 곧 바로 행진방향을 뒤로 돌려 오후 5시 30분께 강남역 4거리 일부를 점거하고 대시민 선전전을 벌이고 자진 해산했다.

한편 앞서 2시부터 두 시간 동안 진행된 본대회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들을 분신정국으로 내모는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과 고 정해진 조합원의 죽음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

고 정해진씨의 현장동료였던 석원희 인천지부 전기분과장은 "정해진 열사께서는 작년 상진전기라는 곳에서 일하셨고 산재를 당하셨고 사측은 그걸 빌미로 능력이 되지 않으니 임금을 깍겠다고 협박했다"며 "더럽고 추악한 세상 안 보시겠다고 한때 미국으로 건너가셨다가 올 8월 입국해 파업투쟁 현장에 합류하셨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석 분과장은 이어 "정해진 열사는 죽을 만큼 살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이 지켜지는 현장에서 일하자고 뜨거운 불길 속에서 통한의 삶을 정리하셨다"며 고인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이날 한국전력 앞은 18개 중대 1천8백여명의 경찰병력이 바리케이트와 전경버스를 동원해 원천봉쇄했다.ⓒ전국건설노조


"정해진 조합원도 살고 싶었을 것", "노동작 왜 이렇게 천대를 받아야하나"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됐다고 떠들어대지만 정해진 열사가 37년전 전태일 열사와 똑같이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주40시간을, 단체협약을 지키라며 숨져갔다"며 "그렇게 1백31일 동안 외쳤지만 용역깡패와 경찰이 한국 건설의 진짜 주인 노동자들을 길바닥으로 내몰았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헌법에 보장된 노조를 만들면 단협을 체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협조차 체결하지 않는 나라, 이런 나라가 OECD에 가입돼 있다"며 "노동자가 투쟁해야 한다. 이제 슬퍼하지 말자. 분노하자. 80만의 분노를, 1500만의 분노를 민주노총으로 모아내자"고 강조했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는 연대사에서 "두 분의 열사가 차디찬 바닥에 누워있는데 이명박과 이회창이 일등 이등을 하고 있다. 절대로 이 상황을 가만 놔둘 수 없다"며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권영길 후보와 함께 이 투쟁 한 복판에서, 비정규노동자의 한을 풀기 위한 비정규노동해방 투쟁 전면에서 이번 대선을 승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오종렬 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우리는 밤낮 억울해서 울고 땅을 치고 울고, 건설노동자의 주먹이 흐르는 눈물이나 닦으면서 그렇게 서럽게 살아왔다"며 "설노동자란 무엇인가. 다리를 놓고 건물을 세우고 전기를 생산하고 신발을 생산하고 우리 생명줄인 식량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다. 이 세상의 주인이다. 왜 이렇게 세상의 주인이 천대받고 짓밟혀야 하는가"라고 절규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노동자대회에 이어 오는 11일 범민중진영의 백만 민중대회에 앞서 오후 1시 서울 남대문에서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2007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어 고 정해진 조합원의 죽음을 추모하고 잇단 노동자 분신정국에 대한 노동계의 투쟁 수위를 높여갈 예정이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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