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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 ‘한미FTA 장례식’, 경찰과 이틀째 충돌

<현장> 문경식 전농의장, 경찰 방패 가격에 부상 입기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본협상 나흘째를 맞은 13일, 경찰과 시민단체 간의 격렬한 충돌이 이틀째 계속됐다. 또 다시 경찰은 방패와 소화기를 사용했고 시민단체들은 맨 몸으로 공세를 저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을지로 훈련원 공원에서 농민단체 회원 6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한미 FTA 장례식’ 행사를 진행했다.

범국본이 지난 2일 스크린쿼터 반대 집회에서 화형식을 치뤘던 ‘한미 FTA 오적’에 대한 상여를 짊어매고 을지로 훈련원 공원에서 신라호텔 앞까지 행진, 상여를 태우는 상징의식이었다.

오적은 한미 FTA 협상 체결의 당위성을 강변하는 노무현 대통령, 한덕수 경제부총리,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 보수 언론이다.

하지만 폭우 속에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시작부터 끝까지 경찰과의 마찰과 충돌이 거듭되면서 순탄하게 치러지지 못했다.

경찰, 상여 뺐고 집회장 난입해 충돌 야기

특히 장례행렬의 최종 도착지인 신라호텔 앞에서는 경찰의 집회장소 난입으로 부상자가 속출, 전날 광화문 범국민대회에서의 물리적 충돌을 재연했다.

이 과정에서 문경식 전농 의장이 경찰의 방패 가격으로 부상을 입는 등 또 다시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따른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와 관련 문 의장을 비롯한 농민단체 지도부는 즉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작년에 두 농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며 “경찰의 폭력행위가 계속된다면 우리 또한 그에 상응하는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사전에 허용된 합법집회에 대한 오늘의 경찰 폭력과 관련 경찰청장은 공식사과하고 중부경찰서장은 당장 사퇴해야한다”며 “우리의 요구를 외면한다면 앞으로 경찰과의 대화는 없다”고 경고했다.

13일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소속 농민회원 6백여명이 한미FTA 장례식 행사를 갖기 위해 을지로 훈련원 공원에서 신라호텔 앞까지 가두행진에 나섰다.ⓒ최병성 기자


범국본은 경찰이 사전에 신고된 상여와 차량을 강제견인해가자 을지로 지하상가 4거리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최병성 기자


마찰은 집회 시작이 임박한 오전 9시 30분경 경찰이 상여를 실은 범국본의 차량을 강제견인하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지난 2일 스크린쿼터 반대 집회에서의 화형식 당시 노 대통령의 상징 조형물을 빼앗은 것과 마찬가지로 ‘한미FTA 오적’의 장례를 의미하는 상여의 집회장소 진입을 차단했다.

이 과정에서 중부서 소속 경찰들은 차량 견인에 항의하는 범국본 관계자 3명을 3시간가량 억류하는 등 과잉 대응으로 물의를 빚었다.

전기환 전농 사무처장은 “이미 전날 집회 성격과 내용을 모두 신고했고 경찰은 대통령의 영정사진을 태우지 않는 선에서 평화적인 집회 보장을 약속했었다”며 “당일날 아무런 사전협의 없이 합법적인 행사를 막아서도 되는 것인가”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이날 범국본 측은 상여만을 제작했을 뿐 영정사진이나 그림을 준비하지 않았고 경찰 또한 견인 당시 이를 확인했다고 밝혀 ‘의도적인 집회 방해’의 목적이 뚜렷해보였다.

범국본 “경찰이 평화적 집회 보장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우리는 상여가 집회장소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라는 지시를 받았을 뿐 자세한 합의사항은 모른다”며 책임감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범국본은 경찰 측에 거듭 상여를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은 뚜렷한 이유를 대지 못한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이에 따라 11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던 가두행렬이 1시간 가까이 지연됐다.

마찰은 결국 상여 없이 가두행진에 나선 11시 50분경 다시 벌어졌다. 상여를 대신해 ‘근조 한미FTA정권’이라고 적힌 피켓을 선두에 세워 행진을 시작한 집회 참가자들이 상여 ‘탈취’에 항의하며 을지로 지하상가 4거리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연좌농성으로 순식간에 을지로 일대의 교통이 마비되기 시작했고 집회 참가자들은 “합법적인 집회를 경찰이 불법행위를 저지르며 방해하고 있다”며 상여를 가져올 때까지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폭우로 한껏 젖은 아스팔트 위에 주저앉았다.

오종렬 범국본 상임대표는 “경찰의 이 같은 행위는 결국 평화집회에 나선 집회 참가자들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해 불법을 유도하고 보수언론을 통해 불법집회로 왜곡하는 전형적인 언론플레이”이라며 “치졸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은 이들의 을지로 점거로 1시간가량 교통체증이 계속되자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서 상여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연좌농성을 풀고 예정된 행진을 계속하는 것으로 범국본과 합의했다.

범국본 측이 상여를 되돌려 받는 데 걸린 시간은 2시간 45분이었다. 범국본은 상여를 돌려받은 2시경 멈췄던 행진을 다시 재촉했다.

신속하게 상여를 조립한 참가자들은 선소리꾼의 구슬픈 메김소리에 맞춰 본격적인 가두행진을 시작했다. ‘한미 FTA 반대’, ‘근조 한미 FTA’라는 문구를 적어넣은 피켓을 든 20여명의 여성 농민들이 상복을 입고 그 뒤를 따랐고 남성 농민들은 상여를 짊어맸다.

이윽고 장례행렬은 행진을 시작한 지 정확히 2시간 만인 오후 2시경에 경찰이 전경버스 3대로 틀어막은 신라호텔 앞 사거리, 동국대 정문 앞에 도착했다. 농민대표들의 간단한 투쟁발언이 이어졌다.

'한미FTA' 상여를 태우는 상징의식.ⓒ최병성 기자


상여에 불이 붙자마자 경찰은 소화기를 난사하며 집회장 진입을 시도했다.ⓒ최병성 기자


문 의장은 “태풍과 폭우로 망친 농사는 내년에 다시 지으면 되지만 한미FTA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우리 사화에 가져올 것”이라며 “마음은 한창 농작물이 자랄 논에 가있지만 이렇게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정재돈 농축수산특별위 공동대표는 “한미FTA는 가라앉는 배에 타는 것과 같다”며 “이를 막아내지 못할 경우 단 한명의 농민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간단한 투쟁발언과 정리집회를 마치고 상여를 태우는 화형식을 진행했다. 하지만 상여에 불을 붙이자마자 경찰이 참가자들에게 소화기를 뿌리며 난입을 시도해 이날 최초로 물리적인 충돌이 벌어졌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충돌을 말리는 문경식 의장을 방패로 가격해 참가 농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경찰의 폭력진압에 대한 농민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문 의장의 부상을 확인한 일부 농민들 사이에서는 ‘신라호텔로 들어가자’, ‘중부경찰서에 항의방문을 가자’는 격한 구호들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특히 이날 저지선의 경찰병력 후미에 지난 해 농민사망 당시 진압의 선두에 섰던 ‘1001 기동대’의 모습이 보이자 농민들은 “사람을 죽여 놓고 무슨 낯짝으로 이곳에 나왔냐”며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 문의장 방패 가격으로 부상입자 뒤늦게 ‘사과’

경찰은 농민들의 거세한 항의가 이어지자 병력을 장충공원 뒷편으로 물리고 중부경찰서장이 직접 나와 문 의장에게 사과했지만 성난 농심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아 양측간의 실랑이가 20여분간 계속됐다.

양측의 충돌은 오후 3시경 경찰이 저지선을 뒤로 물린 후 소강상태로 접어들며 마무리됐고 농민들은 늦은 장충공원에서 늦은 점심 끼니를 때우고는 1박2일간의 상경투쟁 일정을 마쳤다.

한편, 범국본은 이날 오후 경찰의 폭력진압에 항의하는 성명을 통해 “지난 해 농민 시위 과정에서 경찰 폭력에 의해 두 농민이 사망한 이후 이택순 현 경찰청장이 인권경찰을 운운하며 취임했지만 그들의 실체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며 경찰의 과잉진압을 맹성토했다.

문경식 전농 의장은 "왜 합법집회에 폭력을 행사하느냐"며 중부서 관계자에게 강하게 항의했다.ⓒ최병성 기자


범국본은 “경찰 스스로 인권경찰로 거듭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현 경찰청장 역시 불며예 퇴진했던 전임 청장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이택순 경찰청장은 지난 6일 한국언론재단 주최 ‘평화시위 문화 정착을 위한 경찰청장 초청 언론포럼’에 참석해 범국본 측에 ‘평화시위 양해각서’ 체결을 제의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10일 신라호텔 앞 기자회견, 12일 광화문 범국민대회에 이어 이날도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이 청장의 제의를 무색케하고 있다.

특히 이날 범국본은 ‘평화적인 집회’를 강조하며 상여를 태운 이후 모든 일정을 마무리짓겠다고 경찰 측에 사전통보한 바 있어 경찰의 무리한 대응이 불필요한 충돌을 야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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