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조선> 말대로 했으면 이미 국가부도"
<뷰스칼럼> 심상정의 회고, 통화스왑 확대는 '부끄러운 일'
며칠 전 만난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가 한 말이다.
2005년의 풍광
참여정부 초기이던 지난 2004년,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1천990억달러로 2천억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자 재경부(기획재정부 전신)가 외환보유고 문제를 제기하고, <조선일보> 등이 바람을 잡고 나섰다.
골자는 외환보유고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한은이 '안전 위주'로 미국국채 등에만 투자해, 운용수익률이 턱없이 낮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니, 외환보유고는 1천억달러만 남겨두고 나머지 1천억달러는 뚝 떼어내 홍콩투자청처럼 전문 투자운용사를 만들어 공격적 투자로 운용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거였다. 세칭 한국투자공사(KIC) 설립 주장이었다.
한은은 강력 반발했다. 심상정 당시 민노당 의원 등 일부 국회 재정위 의원들도 반대했다. 환란을 겪은 지 몇년이나 지났다고 또다시 '위험한 발상'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경부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끝내 2005년 7월 KIC 설립에 성공했다. 당초 재경부가 1천억달러로 만들려던 것을 200억달러로 줄이고, 부동산 등 위험자산이 아닌 선진국 우량채권에만 투자토록 제동을 건 게 '한은 저항'의 성과물이라면 성과물이었다.
재경부가 당초 KIC 설립 강행을 주장한 이면에는 절반의 외환보유고 운용권을 자신들이 차지하려던 속내도 깔려있었고, 실제로 KIC가 만들어지면서 국제투자 경험이 전무한 '모피아(재무부 마피아)'들의 일자리가 생겼다.
<조선일보> "한은, 극단적 안전주의에 빠져 있어"
재경부와 <조선일보> 등은 그후에도 집요하게 KIC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6월23일자 <조선일보>의 '외환보유 세계 5위...외환투자는 후진국'이란 기사가 대표적 예다.
신문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그동안 한국은행이 독점적으로 운용해왔다. 한은의 투자방식은 극단적인 '안전 제일주의'여서 채권이나 예금에 거의 100% 투자하고 있다"며 "부동산-주식-파생금융상품 등 다양한 투자수단을 골고루 활용하는 선진국의 두자릿대 수익률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고 질타했다. 신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총 200억달러의 종자돈을 갖고 출발한 KIC는 각종 규제와 한은의 견제로 절름발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KIC에게 폭넓은 자율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경부와 <조선일보>가 그렇게 외환운용 모델로 밀어준 KIC는 지난 1월 메릴린치에 20억달러를 투자했다가 절반을 날리는 등,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조선일보> 등이 극찬했던 중동 국부펀드 등도 미국발 금융위기에 원금의 3분의 1이상을 까먹으며 파멸적 위기를 맞고 있다.
심상정 대표가 "재경부나 <조선일보> 말대로 했다면 나라가 이미 결딴 났을 것"이라며 탄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통화스왑 확대...부끄러워 할 일
12일 한일, 한중과 통화스왑을 체결했다. 스왑규모가 늘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나 뒤집어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여기저기 도와달라고 손을 벌린 모양새다. 한반도 주변4강 중에서 현재 우리 못지않은 환란에 휩싸인 러시아를 뺀 미국, 일본, 중국 세나라 모두에게 손을 벌린 것이다.
모두가 '한시적'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다. 자력으로 외환보유고를 다시 확확 늘리고 외국자금이 다시 몰려들 정도로 경제체질을 확 바꾸기 전에는 코를 꿰었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전에 실제로 갖다 쓸 수 있는 돈도 몇십억 달러밖에 안된다.
지금 일본 우익 등이 우리에 대해 "남한, 북한 모두 구걸" 등 온갖 모멸적 비아냥을 쏟아내고 있음을 결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한달여전 300억달러 한미 통화스왑때처럼 외환위기가 끝난 양, 마치 정부가 큰일이나 한 것인양 자화자찬해선 더더욱 안될 일이다.
'잘못'을 반성할 줄 알고 '실력'도 키워야 할듯 싶다. 만에 하나, "우리만 잘못 판단했나. 전세계가 다 그랬지"라고 반문한다면, 더이상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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