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도대체 얼마나 추락하기에?
<심층분석> 공포의 '마이너스 성장시대'에 한국 살길은?
그런 이 총재가 9일 "작년 4분기에 전기대비 기준으로 상당히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며 '상당히 큰 폭'이란 표현을 썼다. 그는 또 "금년에는 경제상황이 성장이나 수출, 고용 등에서 매우 좋지 않다"며 '매우'라는 부사를 썼다. 도대체 실물경제 상황이 얼마나 급속히 나빠지고 있기에, 이 총재가 이런 표현을 쓴 것일까.
이성태 "4분기 큰 폭의 마이너스 확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마친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금리인하 배경과 관련, "작년 4분기에 국내총생산(GDP)이 3분기보다 규모가 크게 줄 것으로, 즉 전기대비로 큰 폭의 마이너스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나간 얘기로 거의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일이 기억하기로는 1980년 하고 1998년 하고 2개년도 말고는 없다. 소위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이후 처음"이라며 "지금 작년 4분기에 전기대비 상당히 큰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는 건 매우 나쁜 한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이어 올해 경제상황과 관련해선 "금년 경제상황도 수출로 보거나 고용으로 보거나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그래서 금년의 성장률 전망도 점점 하향 조정되는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한은이 앞서 예측한 올해 성장률 2% 달성이 힘들 것이란 의미다.
노무라 "한국 올해 -2%"
앞서도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 성장은 예상된 바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도 4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점쳤고, 이에 앞서 11월, 12월 수출이 마이너스 20% 가까이 급락하자 대다수 전문가들도 마이너스를 전망했다. 하지만 이성태 총재처럼 "상당히 큰 폭의 마이너스"는 누구도 감히 거론하지 못했다.
단지 외국계들중 일부만 이런 전망을 했다. 한 예로 일본 노무라 인터네셔널은 7일자 보고서에서 "지난해 한국의 성장률 예상치를 4.0%에서 2.9%로 대폭 낮췄다"고 밝혔다. 4분기가 충격적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는 의미다. 노무라는 올해 전망과 관련해서도 "한국의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상당히 나쁘게 나왔다"며 "올해 성장률 전망을 1.3%에서 -2.0%으로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30일 통계청이 11월 산업생산이 -14.1%라고 발표하자, 일각에서는 4분기 한국 성장률이 두자리 숫자에 육박하는 마이너스를 기록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까지 했다. 일본의 경우 11월 산업생산이 -8.1%를 기록하자 외국계가 일본의 4분기 경제성장률을 -12.1%로 낮춰잡을 것을 근거로 한 추산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올 상반기 한국경제는 최악의 마이너스 성장을 할 가능성까지 우려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성장률이 5%로 상대적으로 높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수출-건설 과잉의존 '냄비형 구조'가 화근
외국계가 특히 올해 한국경제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이유는 한국경제가 구체적으로 이번 세계 대불황에 가장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에서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달한다. 특히 IMF사태후 수출의존도가 급증했다. IMF사태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가격경쟁력이 생기자 너도나도 수출에 올인했기 때문. 그 결과 세계 대불황으로 수출환경에 이상이 생기면서 11월, 12월 수출이 20% 가까이 급감하자 한국경제가 밑둥채 흔들리는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
건설업에 과잉의존하고 있는 내수 구조도 화근이 됐다. 건설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15%. 우리와 비슷한 경제규모인 다른 나라의 2~3배 규모다. 지난 수년간 후진국형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펴온 결과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부동산거품이 터지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경제구조 자체가 이처럼 쉽게 끓었다가 순식간에 급랭하는 '양은냄비형 구조'를 갖고 있으니, 세계 대불황이 도래하면서 안팎으로 타격을 입으면서 어떤 나라보다도 크게 휘청대기에 이른 것이다.
미봉책 아닌 근원적 산업체질 개선해야
정부의 비상경기대책은 산업구조가 이처럼 엉망이다 보니 이를 버티는 쪽으로 펼쳐지고 있다. 수출 드라이브와 토목중심의 경기부양이 그것이다. 구조를 바꾸려 손대기보다는 더이상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막는 데 치중하는 모양새다. 정부 사정도 이해가 되는 게 그냥 있다간 사상최악의 실업 발생과 그에 따른 정치, 사회불안이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미봉책만으론 1,2년후 최악의 상황을 벗어난다 할지라도 한국경제의 앞날은 암울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발등의 불만 끄려다가 낙후한 경제구조를 존속시키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경제구조를 근원적으로 변화시키는 고민을 치열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 소니그룹의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29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세계경제 일극(一極) 지배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하며 "일본은 전후 최초로 스스로 판단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규모가 큰 것이 좋다는 20세기 상식이 붕괴되면서 일본도 사고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게 됐다"며 "중국이 최신설비를 사용해 저임금으로 물건을 만드는 시대에 대량생산형보다는 테일러메이드형 산업이 유망할 것"으로 내다봤다. 맞춤형 명품 생산만이 살 길이라는 조언이었다.
원-달러 환율 폭등에도 현대차의 12월 미국판매가 경쟁사들 가운데 최악으로 반토막나고, 믿었던 삼성전자도 크게 휘청대는 절대위기의 계절에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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