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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행보 일지'가 '민심 일지' 되다!

손학규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

"손학규 전지사가 민심대장정을 나선다는 보도를 접하고 나도 그 흔한 정치인의 이벤트쯤으로 생각했었다. 100일간의 민심대장정 65일째. 내 지역구인 경남 김해로 오신다기에, 하루 일정을 모두 비우고 손 전지사와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

택시를 타고 보건복지센터로 온 손 전지사는 '수행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악수를 청하며 요란스레 들어오리라'는 나의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배낭을 메고 길게 돋아난 수염과 오랜 객지 생활에서 묻어난 체취가 영락없는 농부요, 나그네로 경기지사와 예비 대권후보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종합사회복지관에서 독거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 활동을 지원할 때도, 대동화훼단지에서 화훼작목반 농민들의 하소연을 들을 때도, 조금만 더 하자고 연신 삽질을 해대며 거름을 담을 때도 그들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완벽한 무위(無爲)와 진정성이 어떻게 사람과 사람사이의 벽을 허물고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손 전지사의 민심대장정 100일이 끝나면 민심이 그의 진정성을 알게 될 것이다."


경남 김해가 지역구인 김정권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6일 당 홈페이지에 기고한 글 가운데 일부다. 김 의원은 평소 손 전지사와 별다른 인연을 맺지 않고 있던 의원이었다.

김 의원 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요즘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서 손 전지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상당한 변화가 읽히고 있다. 종전의 지배적 시각은 "손학규, 사람은 좋은데 뜨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박근혜-이명박 후보처럼 지역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중적 지명도도 크게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손 전지사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2~3%대에 불과했다. 박-이 후보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달라지는 한나라당-언론의 시각

그러던 것이 요즘 들어선 "어, 이거 봐라. 장난이 아니네"라는 경악음이 당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박-이 캠프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자들뿐 아니라 중소기업 경영인, 국회 보좌관 등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연일 손 전지사가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일반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최근 손 전지사 지지율이 '마의 5%'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평가도 달라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크게 '친박'과 '친이' 진영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의원들도 소장파를 비롯해 상당수 있다. 앞서 김 의원의 글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듯 이들이 손학규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20여명의 의원들이 손학규의 민생대장정에 동참했고, 홍준표 의원 같은 중진도 손학규 지지입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지난달 28일 목포 수협 공판장에서 물청소를 하고 있는 손학규 전지사. ⓒ손학규 홈피


언론의 움직임도 간단치 않다. 모 보수 메이저신문의 경우 아예 기자 한명이 손 전지사의 민심대장정을 동행 취재하다시피 하고 있다. 또 모 TV방송은 1백일 대장정이 끝날 때 방영할 목적으로 역시 손 전지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손학규를 유력한 대권후보 중 하나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언론들도 손 전지사에 대해 더없이 '호의적 기사'들을 싣고 있으며, 그때마다 텁수룩한 수염의 손학규 이미지는 국민들의 뇌리에 인상적으로 각인되고 있다.

정가에서는 최근 손 전지사의 대중 지지율이 '꿈틀'대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이런 언론 보도의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손 전지사는 경기도지사 재임시절 자신의 낮은 지지율에 대해 '언론 탓'을 한 적이 있다.

"서울시장과 경기지사를 대하는 언론 태도가 하늘과 땅 차이다. 서울시장이 무슨 일을 하면 중앙지와 방송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그러나 경기지사가 무슨 일은 하면 지방지나 지역주재기자가 다루고, 그러면 신문 한 구탱이나 방송 끝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손 전지사로서는 할만한 불평이었다. 아무래도 경기지사보단 서울시장에 언론 관심이 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재임시 '언론 핸디캡' 극복 방안을 찾지 못했던 손 전지사는 지사직에서 물러난 뒤 해법을 스스로 찾은 셈이다.

'대권행보 일지'에서 '민심 일지'로 변화

요즘 손 전지사 홈페이지에는 찾는이들이 부쩍 늘었다 한다. 솔직히 1백일 대장정 초기에는 텁수룩한 손 전지사 모습외에는 별로 눈길을 끄는 게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져갔다. '폭발 직전'의 절절한 '민성'이 여과없이 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손 전지사가 아닌 '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대권행보 일지'가 '민심 일지'로 바뀌어 갔다.

8일 목포에서 쓴 '맨 땅에 헤딩하는 이유'라는 손 전지사 글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 국민들은 나름대로 정치에 빠삭하고 어찌 보면 정치인들 머리 꼭대기에 올라타고 있다.

경남 산청에서 한우 축사의 소똥을 치울 때 일이다. 마을 이장님이 트랙터에 올라 사진을 찍으라고 권유했다. 그분에게 정치는 트랙터에 올라 사진이나 찍고 가는 것이었던 셈. 그날 그분에게 트랙터 조작하는 법을 배워 똥을 치운 다음 지금까지 써먹고 있다.

분명한 것은 서민 생활을 겪으며 얘기 듣는 것과, 악수를 하며 얘기 듣는 것은 다르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수해복구를 나가 삽질을 하고 농촌에서 트랙터를 모는 게 정치인이 할 일은 아닐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서민들이 정치가 자신의 아픔을 알아준다는 것을, 생활에 함께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야 국민이 정치를 신뢰할 수 있다. 트랙터에 올라 사진 찍는 게 아니라, 트랙터를 몰고 똥을 치우는 거 말이다."


맨처음 '대권행보' 차원에서 시작한 대장정 과정에 손학규 그 자신도 크게 바뀌어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글이다.

한 농촌어머니, "요즘은 개천에서 용 아니라, 미꾸라지 납니더"

지난 4일 진해 웅천 농협김치공장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어머니의 마음'에서도 '민'은 조연이 아닌 주역이었다.

"아주머니들도 어렵고 농협도 어려웠다. 여기서는 김치를 만들어 주로 일본으로 수출을 하는데 중국산 김치가 저가로 몰아치기 때문에 수출이 줄어들고 있다. 웅천 농협에서 작년에 300만 불 수출했는데 금년에는 150만 불밖에 예상하지 못한다. 중국산 김치 완제품이 kg 당 800원인데 국내산은 배추값만 kg당 800원이니 어떻게 경쟁을 하겠느냐는 거다. 농협에서는 배추 뿐 아니라 고추, 마늘 등 모든 재료를 국산으로 써야 하니 원가를 맞출 길이 없는 것이다. 손해 차이는 당연히 농협이 보전해 줄 수밖에 없다. 농협 김치 공장이 작년에 12개 였던 것이 금년에 2개가 폐쇄, 또는 폐쇄예정이라고 한다.

당연히 임금이 박할 수밖에 없다. 10년 된 아주머니 월급이 70만원 남짓이라고 했다. 최저임금이다. 여기서도 의료보험을 27,000원 내고 갑근세, 국민연금 해서 9-10 만원쯤 뗀다. 이 돈을 받아서 어느 아주머니는 10살 짜리 하나인 자녀교육에 30만원을 쓴다. 이것마저 문닫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는 이 공장 문 안 닫고 일해서 돈 버는 게 문제지, 대통령이 누가 되든 관심 업심더.”

나라에 대한 요구사항도 간단하다. “세금 좀 적게 내게 해주이소.” “자식들 학교 나오면 취직되게꾸럼 해 주이소.”하는 두가지 뿐이다. 헤어질 때 내가 대장정에서 만난 거의 모든 서민들이 그랬듯이 “우리 서민들 좀 잘살게 해 주이소” 하는데 이번에는 한마디 더 붙인다.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고 했는데 요새는 개천에서 미꾸라지 납니더.” 라고 말하는 것이다. 체바퀴 돌 듯 어려움이 대물림되는 세상을 향한 원망과 자조적인 마음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도 틀에 박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 희망을 보여 달라는 강렬한 바램을 담고 있었다. 내 마음에 꼭꼭 챙겼다."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고 했는데 요새는 개천에서 미꾸라지 납니더”라는 말은 '가난 대물림'에 대한 어머니의 자괴심과 울분을 그대로 담고 있는 성난 '민성'이었다.

손 전지사가 지난 4일 진해 김치공장에서 만나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 ⓒ손학규 홈피


지난 2일 김해에서 만난 농민들은 이렇게 울부짖었다고 손 전지사는 기록하고 있다.

"하우스 기름값은 해마다 오르는데 장미 값은 20년 전보다 못하다. 아이들 교육은 시켜야 하니 현금이 도는 화훼 하우스를 그만 둘 수는 없다. 허나 농사가 잘되면 잘될수록 빚만 늘어난다.

앞집 사는 김씨는 화훼 농사를 때려 치고 택시운전대를 잡았다. 뒷집 사는 이씨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 지금은 농막 신세다. 김씨도, 이씨도 빚 때문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애 새끼들만 아니면 당장이라도 죽고 싶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라도 이보단 나을 테지.

올해도 풍년이 들까봐 겁이 난다. 농산물 값이 얼마나 떨어질지, 빚은 또 얼마나 늘어날지 걱정이다. 태풍이라도 불어 어디라도 농사가 폭삭 망했으면 좋겠다. ‘죽는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아야지.’ 생각이 예까지 미치자 어디선가 김씨와 이씨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못난이 농민이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지난 1일 마산에서 목격한 '환경미화원의 생활'은 이러했다.

"창원에서 환경 미화원들과 함께 재활용폐품 수거작업에 나갔다.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 하나하나를 줍고 정리하는 미화원들의 손길에서 마치 농부가 자기가 키우는 농작물을 대하는 듯한 정성과 사랑을 본다. 쓰레기를 차곡차곡 쌓는 일도 보통 기술이 아니다.

수거차에는 세 사람이 탔다. 운전기사 한분과 미화원 두 분이다. 운전기사는 딸 둘이 다 커서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가끔 딸들이 용돈도 보내 준다고 한다. 행복해 보였다. 미화원 한분은 장가를 늦게 가서 중학교 하나 초등학교 하나인데 학원비가 40만원 든다고 한다. 미화원 또 한분은 부인이 아이들에게 영어수학을 가르쳐 주기 때문에 과외비는 안든다고 했다.

집은 어떤 데 사느냐고 물어봤다. 머뭇머뭇 대답을 안한다. 운전기사가 “민생 탐방을 나오셨으니 다 말씀드려보라”고 하니 그때야 입을 연다. 한 분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0만원, 또 다른 한분은 월세 25만원에 세들어 살고 있다고 한다. 운전기사에게도 물어봤다. 당연히 집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멋쩍은 웃음을 띄우더니 자기도 집이 없다고 했다. 1,000만원짜리 전세에 산다고 했다.

미화원 한분은 아버님도 모시고 산다고 했다. 어머님은 돌아가셨단다. 며느님이 고생하시겠다고 했더니 얼굴 표정이 일그러진다. 운전기사가 끼어든다, 부인이 없이 혼자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아버지 수발든다고 했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손학규 "세상이 알아주든 않든,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

지난 4일 손 전지사는 글에서 지난 6월30일 이래 대장정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담담히 토로했다.

"세상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결국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때가 되면 바람이 불고, 곡식 또한 여물게 돼 있는 게 자연의 섭리 아닌가 말이다."

그의 깨달음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태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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