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계'인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이 열린우리당 탈당 사태 등 범여권의 정계개편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당내에선 이명박-박근혜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한나라당이 문호를 열고 열린우리당, 민주당, 국민중심당의 보수세력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해 정가에 미묘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무성 "한나라당, 당명 교체하고 각당 보수정객들 영입해야"
김무성 의원은 23일 부경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답사를 통해 "지역감정이 지배하는 정치 풍토를 바꾸기 전에는 이 나라 정치 발전은 한계가 있다"며 "정치권은 과거를 모두 덮고 정체성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당을 같이 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한나라당은 당의 정체성을 중도보수 실용주의로 이동하고 필요하다면 당명을 교체하는 등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며 "열린우리당, 민주당, 국민중심당의 건전 보수 정객들을 영입해서 새로운 체제에서 대통령 후보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대선은 모두 단일세력이 아닌 연대세력이 집권했다"며 "만약 이번 대선도 현재의 유리한 국면을 과신해 한나라당 단일세력으로만 집권하려 한다면 또 다시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각 당의 보수정객 영입론을 주장해 정가에 미묘한 파문을 불러일으킨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이 박근혜 전대표와 모종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떠오른 김무성의 '보수신당 창당론'
김 의원은 박근혜 대표 시절 사무총장을 맡았던 대표적 ‘친박’계 인사. 그가 '보수신당 창당'론을 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 의원은 지난해 9월에도 한화갑 당시 민주당대표와 회동후 “민주당에 보수쪽 의원이 다수 있는데 당 대 당 통합을 하게 되면 지분 싸움을 하게 되고 불협화음이 많이 나온다”며 “아예 한나라당을 깨고 새로운 당을 만드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열린우리당도 우파와 좌파가 섞여 있듯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라며 “제3의 당인 ‘중도보수당’을 만들어 정체성을 같이하는 (민주당) 호남 의원을 받아들이고, 한나라당의 진보 의원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중심이 돼 만들 ‘진보당’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경상도, 전라도의 보수 의원들이 함께해야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인 지역감정이 실질적으로 해소된다”며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로 정해진 사람은 정치 지도력을 발휘해 반드시 신당을 만들어서 보수연합을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져, 김 의원 주장을 바라보는 정가 시각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9월만 해도 박근혜 전대표 지지율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앞서갔었다. 또한 열린우리당 등 범여권의 정계개편 논의도 수면밑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열린우리당에서 탈당 도미노가 시작되면서 정계개편의 막을 올랐고, 한나라당 내부는 '후보 검증'을 놓고 박근혜-이명박 진영이 사활을 건 전투 중이다. 이런 마당에 '박근혜계' 핵심인 김무성 의원이 열린-민주-국중당 보수 정객들을 영입해 한나라당 이름까지 바꾸고 '보수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니,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는 게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계안 "한나라당과 접촉하는 열린당 의원 있어"
김 의원 주장의 배경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가지. 하나는 해체작업에 들어간 열린우리당내 보수세력을 끌어안자는 이른바 '이삭줍기'.
실제로 지난해 후반부터 한나라당 문을 두드리는 열린우리당내 일부 보수의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여옥 최고위원은 "15명가량 된다"고 숫자를 공개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이계안 의원도 24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으로 가고 싶어하는 의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얘기를 동료 의원들 얘기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그런 것이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여러 가지 지역구 사정도 있겠고 경제문제에 관한 것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도 그런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관료출신 일각의 한나라당 접촉을 시사하기도 했다.
정가에서는 분양원가 공개 등을 놓고 건설업계 입장을 대변해 열린당내 친노-반노진영 모두로부터 융단폭격을 받은 강봉균 정책위의장 등이 한나라당의 이삭줍기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황에 따라선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의 보수의원들도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이들 세력이 아직 '제3 후보' 출현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어 1차대상은 열린당 보수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가의 지배적 관측이다.
박근혜, 최악의 상황 대비하나
다른 하나의 시각은 '후보 검증' 카드를 꺼내들면서 이명박 전시장측과 사활을 건 싸움을 시작한 박근혜 전대표측이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한 포석이 아니냐는 것.
실제로 '후보 검증' 갈등이 시작되자 윤여준 전 여의도연구소장 등 한나라당 상당수는 "이러다 당이 쪼개지는 게 아니냐"는 극한적 우려를 표출했다. 상대방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싸움이 시작된만큼 승패가 어떻게 나더라도 두 사람 사이의 봉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우려다.
이에 일각에선 박근혜 전대표 핵심측근인 김무성 의원이 당명까지 바꾸는 '보수 신당' 창당을 주장하고 나선 이면에는 분당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포석까지 깔려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에 이어 한나라당에서도 분화 가능성이 나타나는 등 2007 대선정국은 초반부터 대 빅뱅을 예고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