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 씨가 19일 전남 무안 장터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기다렸다. 한나라당 후보 지원유세차 무안에 내려온 박 전 대표와 악수하기 위해서였다.
박근혜, 기다리고 서 있던 김홍업에 "고생많으세요"
박 전 대표는 19일 오전 전남 신안.무안 4.25재보선에 출마한 한나라당 강성만 후보 지원유세차 무안 장터를 찾았다. 무안 장터에서 강 후보의 지원 유세를 끝낸 박 전 대표는 뜻밖의 인물이 자신을 기다리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주인공은 상대당 유력 후보인 김홍업 후보.
김 후보는 연설을 마치고 무안 장터를 둘러보기 위해 이동하는 박 전 대표를 먼발치서 2분여동안 일부러 기다렸다. 이낙연, 이상열 민주당 의원 앞에 서 있던 김 후보는 환한 웃음으로 박 전 대표가 자신에게 다가올 때까지 서서 기다린 것. 김 후보의 뜻밖의 영접(?)에 박 전 대표 역시 환하게 웃으며 "고생많으세요"라고 김 후보를 격려했다.
이 날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박 전 대표측 핵심 의원에 따르면 이 날 박 전 대표가 무안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 후보측 핵심 인사가 "만나서 악수라도 하자"고 제의했던 것. 제안을 받은 박 전 대표측 의원이 이 날 오전 9시 45분 대한항공편으로 광주에 도착한 박 전 대표에게 보고했고, 박 전 대표도 흔쾌히 수락했다는 후문이다.
이 날 박 전 대표를 수행한 김무성 의원은 "별다른 의미가 있겠나? 선거 운동 현장에서의 으레있는 인사치례 아니겠나"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DJ-박근혜 연대설'에 대한 경계인 셈.
그러나 이 날 김 후보측의 배려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무안.신안 지역은 수백개의 섬으로 둘러싸여있다. 때문에 선거 유세 활동도 어렵다. 당연히 무안 장터 5일장이 들어선 이 날은 막판 표심 잡기의 절효의 기회였다. 그럼에도 김 후보측은 예정돼있던 10시 30분 유세를 박 전 대표측에 내주었다.
앞선 10시에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무안 장터를 휩쓸고 간 터라 김 후보측 인사들은 예정된 10시30분 유세를 꼭 해야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후보가 박 전 대표가 10시 30분에 도착하니 장소를 내어주라고 박 전 대표를 배려했다고 전해진다.
상대측에게 장소를 내어주어도 방송용 음악을 틀어 상대의 기를 꺾어놓는 것이 선거판의 일상 풍경. 그러나 김 후보측은 박 전 대표의 유세시 음악도 끄고 분위기를 마련해줬다. 박 전 대표의 유세가 끝나자 김 후보측 유세차량에 올라서 있던 현장 사회자는 "박 전 대표님 안녕히 가십시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30분 정도면 많이 기다려 드렸습니다. 우리로서는 예의를 갖출대로 갖췄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의 딸과 아들이 유세장에서 만났다. 19일 전남 무안읍 장터에서 4.25 재보선 지원유세에 나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민주당 김홍업 후보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측 "역시 김홍업, 통이 크다"
김 후보측의 배려에 박 전 대표측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은 "오늘 김홍업 후보를 다시 보게됐다"며 "역시 통이 크다. '호랑이는 고양이를 물지 않는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라고 김 후보를 치켜세웠다.
또 다른 이 지역인사는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들어선 무안 장터 장날에 이렇게 배려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라며 "아마도 김 후보 캠프 실무진들은 불만이 많을 것"이라고 웃었다.
박 전 대표 또한 이 날 무안 유세에서 김 후보측을 결코 자극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 지원 유세 때는 현 정부 비판은 물론 상대당 후보보다 나은 한나라당 후보의 장점을 열거하는 것이 이제껏 박 전 대표의 연설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이날 박 전 대표는 노무현 정권의 실정만 탓했다.
그는 유세에서 "어제 청와대에서 2가지 참 황당한 주장을 했다"며 "하나는, 지금 국민들 사이에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총체적인 위기라고 제가 얘기했더니, 지금 경제가 좋은데 무슨 위기냐, 근거를 대라고 했다"고 자신을 향한 청와대의 공격을 비판했다. 그는 "저는 제가 하나하나 근거를 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누구보다 피부로 잘 느끼고 계실 여러분에게 묻겠다. 여러분, 지금 살기 좋은가? 청와대는 지금 경제가 좋다고 하는데, 여러분, 맞나?"라고 거듭 청와대를 공격했다.
그는 또 "제가 현 정권은 국민들 세금 걷어서 돈 쓰는데만 혈안이다, 이제 돈을 쓰는 정부가 아니라, 돈을 버는 정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더니, 저보고 돈 버는 정부 만드는 방법 좀 가르쳐달라고 했다"며 "이건 제가 이 자리에서 답하겠다. 정부가 우리나라를 세계로부터 돈과 사람과 기술이 몰려드는 나라로 만들면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며 "그런데, 현 정부는 지난 4년 동안, 해야 할 일은 안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만 해왔다"고 거듭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비판했다.
그는 "이젠 바꿔야 한다.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이번 선거는 정권교체냐, 아니냐가 결정되는 마지막 관문"이라고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박 전 대표를 수행한 또다른 의원은 박 전대표의 조심스런 연설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홍업 씨가 출마한 것을 굳이 우리가 비판 안 해도 이 지역 사람들은 다 안다"고 해명했다.
한편 민주당 소속 정종득 목포시장과 박우량(무소속) 신안군수는 박 전 대표가 점심 식사차 머물고 있던 식당에 들러 박 전 대표에게 서해안개발 특별법 지원을 요청했다. 이 날 박 전 대표의 전남 방문에는 김무성, 이인기, 이계진, 곽성문, 한선교 의원 등이 동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