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저항시로 박정희 군사정권과 치열히 맞섰던 김지하 시인이 8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토지문화재단에 따르면, 김지하 시인은 최근 1년여 동안 투병생활을 한 끝에 이날 오후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유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계했다.
전남 목포 출생인 고인은 서울대 미학과를 나와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비' 등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70년 5월호 <사상계>에 권력형 부정과 부패상을 통렬히 비판한 담시 ‘오적’(五賊)을 발표해 반공법 위반으로 잠시 구속됐다.
이어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그해 체포된 후 내란선동죄 등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기까지 6년 4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1973년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딸 김영주와 결혼했으며, 1975년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 로터스상과 1981년 국제시인회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받았다.
김 시인은 그러나 1991년 공안세력의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때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우라'는 글을 <조선일보>에 실으면서 동조하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운동권과 각을 세우기 시작하더니, 2012년 대선때 박정희 전 대통령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을 계기로 진보진영과 완전 결별했다.
그의 서울대 미학과 후배인 진중권 전 교수는 이에 대해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이미 오래"라고 직격하기도 했다.
그는 그후 정부를 상대로 6년 4개월 옥고에 대해 35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내 15억원을 받기도 했다.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으로, 가족장으로 차려질 예정이다. 생전의 김지하 시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