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이 은행을 잡아먹다"
<뷰스칼럼> 정부의 저축은행 살리기로 은행-기업 죽을 판
"요즘 돈이 은행에서 저축은행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은행도 예금 유치를 위해 금리를 크게 높였으나 은행보다 저축은행이 더 고금리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고객은 30억원을 은행에서 모두 찾아 이를 5천만원 미만으로 쪼개 수십개 저축은행에 집어넣더라. 저축은행이 만에 하나 파산하더라도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원리금을 모두 보전받기 위해서다. 저축은행이 은행을 잡아 먹는 형국이다."
시중은행 임원의 탄식이다.
반대로 저축은행측은 희희낙낙이다. 저축은행 고위관계자의 전언.
"요즘 시중의 돈은 두 군데로만 몰린다. 회사채는 AAA 등급 기업 것만 사들이고 있다. 나머지 돈은 저축은행으로 몰리고 있다. 이처럼 저축은행으로 돈이 쏠리다 보니,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 중소기업은 물론 최근에는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까지 저축은행을 찾고 있다."
그는 정부가 최근 1조원을 들어 저축은행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채권들을 모두 사주기로 한 데 대해서도 대만족이었다.
"한동안 저축은행 창구에 돈을 맡기려는 고객들이 줄을 서 장사진을 이루다가 언론에서 일부 저축은행 부실이 20%에 달한다는 기사들이 쏟아져나오자 멈칫했었다. 그러다가 정부가 1조원을 들여 부실채권을 모두 사준다고 하자 다시 돈이 몰려들어오고 있다."
민정수석실까지 나섰으나....회사채 금리는 폭등
이명박 대통령이 연일 시중금리 인하를 지시하고 민정수석실까지 중소기업 대출 독려 및 시중금리 인하를 위해 나섰으나, 시중금리는 계속 수직상승중이다.
투자적격 등급인 BBB- 등급의 회사채(3년 만기) 금리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인 지난 8월 말 10.27%에서 9월 말 10.81%, 10월 말 11.32%, 11월 말 12.53%로 급등했다.
AA-등급의 회사채(3년 만기) 금리도 8월 말 7.34%에서 11월 말 8.91%로, 91일 물 기업어음(CP) 금리는 같은 기간 6.10%에서 7.12%로 상승했다. 상반기 5~6%에 머물던 카드채 금리가 최근에는 8~9%로 뛰었다.
하지만 앞서 시중은행 임원이 밝혔듯, 시장에서 실제로 거래되는 회사채는 AAA 정도다. 나머지는 거의 거래가 안되고 있고, 대부분의 은행채나 카드채는 한국은행의 매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들은 과거 기준으로 보면 거의 사채 수준인 고금리를 감수하고 너도나도 저축은행을 찾고 있다.
정부의 1조원 지원을 "저축은행을 살리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인 저축은행들은 희희낙낙하며 고리대 대출을 계속하고 있다. 정부가 저축은행들을 살리려다가 은행에서 돈이 빠져나가면서 은행을 궁지로 몰고, 궁극적으로 기업들을 벼랑끝으로 몰고 있는 어이없는 상황 전개다.
이러니, 경제계에서 "옥석을 안 가리니 모두가 함께 죽게 될 판"이란 불만이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 때문에 새우가 고래를 잡아먹기에 이른 형국이다.
3월 위기? 이미 위기
정부는 지금 "3월 위기설은 허구"라며 위기설을 진화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다음아고라에까지 기획재정부가 3월 위기설에 대한 해명글을 올릴 정도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년 3월까지 갈 것도 없고, 지금 상황 자체가 이미 '위기'다. 잘못된 정부정책으로 '은행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은행의 위기'는 단기외채 유출을 가속화시키는 치명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부는 10월29일 300억달러 한미통화스왑 체결후 "외환위기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웬걸? 지금도 단기외채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2일 40억달러에 이어, 9일 또다시 30억달러를 미국에서 들여다 풀 예정이다. 아마 매주마다 미국에서 달러를 들여와야 할 형국이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는 대부분 재무채권(TB) 등 미국정부 채권이다. 달러화로 바꾸려면 이를 시장에 내다팔아야 한다. 미국정부가 질색이다. 미국채권이 휴지값이 되면 미국은 국가 파산위기에 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TB를 팔지말라며 대신 300억달러 통화스왑을 해준 거다.
하지만 통화스왑을 매주 들여와야 할 정도로 시중은행들의 달러가뭄은 계속되고 있다. 선진국 금융기관들의 사정이 다급하기 때문이기도 하나, 한국 시중은행들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봉책은 더 큰 위기를 낳을뿐이다. 저축은행이 은행을 잡아먹고, 은행이 기업을 잡아먹는 현재의 기막힌 위기 연결고리가 이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