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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죽은 한 풀기 전엔 못 내려간다”

<현장> 포항건설 노동자 1천여명, 상경투쟁 끝에 전원연행

이마에 질끈 동여맨 붉은 띠 사이로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고인의 영정을 든 20명의 건설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걸었다. 그들의 뒤를 바짝 붙어 상복을 입은 40여명의 노동자들이 굳은 표정으로 행렬을 이어갔고 다시 고 하중근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장과 전국에서 모인 2천여명의 노동자들이 그들을 따라갔다.

포항건설노조와 전문건설업체의 21차 임금단체교섭이 다시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16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하중근 사망 책임자 처벌 및 포항파업 해결 촉구 결의대회’가 열렸다.

8.15대축전 참가를 위해 당일 새벽에 상경한 포항건설노조 조합원 1천여명은 상경 이틀째를 맞는 이날 서울역에서 을지로 프레지던트 호텔 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며 보수언론과 정부, 시민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자신들의 투쟁을 알려나갔다.

포항건설노동자를 비롯한 2천여명은 16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 앞에서 포스코 사태 해결 및 고 하중근씨 사망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뷰스앤뉴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서울역에서 을지로 1가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뷰스앤뉴스


노수희 전국연합 의장의 대회사와 최은민 민주노총 부위원장, 박인숙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의 연대사, 그리고 건설운송노조와 포항건설노조, KTX여승무원 지회의 투쟁사를 끝으로 약식집회를 마친 2천여명의 노동자들은 오후 3시 15분경 가두행진을 시작했다.

“맞아 죽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이들은 가두행렬 중간 중간 시민들을 향해 “집회 도중에 맞아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고 경찰 방패에 의한 죽음은 넘어져서 죽은게 되고 우리의 저항은 폭도로 왜곡되고 있다”고 호소하며 선전전에 나섰다.

행렬은 서울역~남대문~회현고가를 거쳐 을지로 1가까지 이어졌다. 간혹 지나가던 시민들은 그들의 행렬을 유심히 살펴보며 대학생들이 나눠주는 선전문을 꼼꼼히 읽어보기도 했다.

포항건설노동자들은 회현 네거리를 지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올해 산재사망 1위 기업 GS건설의 충무로 서울중앙우체국청사 20층 건물의 신축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서울 중구 충무로 서울중앙우체국 청사 신축현장을 바라보는 한 포항건설노동자.ⓒ뷰스앤뉴스


오후 4시 10분경 행렬은 당초 을지로~광화문 행진로를 이탈해 을지로 1가에 도착했다. 이들은 서울시청 광장을 지나 광화문 열린시민공원까지 행진을 이어가려했지만 이내 경찰은 광장으로 진입하는 왕복 5차선을 봉쇄하고 ‘행진로를 이탈한 불법 도로 점거’라며 해산을 종용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가두행진의 목적이 대시민 선전전에 있었던 노동자들은 경찰의 해산 명령에 불응하고 그 자리에서 연좌농성에 돌입했다.

건설노동자들의 절규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지난 3차례의 상경투쟁에 이어 또 다시 감행한 2박3일간의 강행군과 포항과 서울을 오가며 벌이고 있는 파업투쟁에 지친 노동자들은 을지로 1가 프레지던트 호텔 앞 아스팔트 위에 주저앉아 연신 구호를 외치고 방송차량을 통해 서울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죽은 노동자는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답니다”
“노동자들은 짓밟히고 죽어나가는데 언론은 제대로 된 기사 한줄 안내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포항은 다친 노동자들이 입원할 병원이 없어서 외지로 몰리고 있습니다”
“47일 동안 63명의 노동자들이 구속됐습니다. 63명의 가장이 생존권을 주장하다 감옥에 갔습니다”

시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연방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고등학생부터 교통 불편을 이유로 비난을 퍼부어대는 중년의 남성까지 연좌농성에 나선 노동자들에게로 관심이 집중됐다.

지나가던 50대의 한 시민은 “방송사가 2시간 넘게 취재해가도 제대로 보도를 안해 없는 사람들만 죽어나가고 있다”며 노동자들의 연좌농성을 독려하기도 했다.

4시 25분, 경찰의 첫 경고방송이 시작됐다. 경찰 방송차량은 노동자들을 향해 “여러분들은 신고된 행진로를 이탈해 불법 도로 점거를 하고 있다”며 “자진해산하지 않을 경우 전원 연행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경찰이 연행 경고방송이 거듭되자 포항건설노동자들은 옆 사람들과 팔짱을 껸 채 저항했다.ⓒ뷰스앤뉴스


하지만 건설노동자들은 “우리는 불법이고 경찰이 방패로 사람 죽인 것은 합법이냐”며 양 옆의 노동자들과 팔짱을 끼고 그대로 드러누워 경찰의 연행을 거부했다.

소강상태가 계속되자 최은희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이해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등은 남대문경찰서장에게 “길을 터주면 평화 행진 후 자진 해산하겠다”고 말했지만 경찰 측은 이를 거부하고 “신고된 행진로로 행진을 계속하거나 자진해산할 것”을 종용했다.

이어 남대문 경찰서장과 경비과장이 방송차량으로 다가가 거듭 경고방송을 했고 6시경에는 방송을 통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 후 1천5백여명의 경찰병력을 투입해 포항건설노동자들에 대한 전원연행에 나섰다.

시민 1백여명이 을지로 1가 인도변 곳곳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연행되는 모습을 지켜봤고 일대는 끌려가는 노동자들의 절규로 가득찼다.

6시 20분경, 건설노동자 1천여명 전원 연행

건설노동자들은 거리에 누운 채 동료들의 팔짱을 껸 채 버텼지만 이내 경찰에 의해 한 명씩 떼내어져 미리 준비된 수십여대의 호송차량으로 끌려갔다.

건설노동자들은 연행되는 와중에도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힘없는 노동자들이다. 한 노동자가 경찰 방패에 찍혀 억울하게 죽었다”며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을 향해 소리쳤다.

경찰은 단 20분만에 연좌농성 중이던 1천여명의 포항건설노동자를 전원 연행했고 이 과정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이해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과 최은민 민주노총 부위원장, 권오만 민주노총 조직강화특위위원장 등도 연행됐다.

경찰의 연행이 시작되자 모든 노동자들은 자리에 누웠다.ⓒ뷰스앤뉴스


이날 연행된 건설노동자들은 인근 남대문 경찰서를 비롯해 방배, 종암, 영등포, 관악, 서초, 금천 등 서울 시내 18개 경찰서에 분산 호송됐다.

‘고 하중근씨 대책위’ 17일부터 광화문 열린공원 무기한 천막농성 돌입

한편,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고 하중근 열사 대책위원회’ 소속 노동사회단체 대표들은 17일 오후 1시 30분, 광화문 열린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한다.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대책위 대표단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살인폭력 경찰 책임자 처벌 ▲대통령 사과 ▲포스코 사태해결 등 3가지 요구안을 내걸 예정이다.

또한 민주노총은 오는 19일 포항, 27일 부산에서 각각 전국노동자대회와 추모집회 등 대정부 집회를 잇달아 열고 정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나간다.

이밖에도 민주노동당은 9월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단병호 의원과 건설교통위원회 이영순 의원이 각각 포스코 사태와 관련해 관계자들의 증인채택을 추진하고 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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