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처럼 대형로펌으로 가고 있는 퇴직 법관들이 최고 27억원의 천문학적 연봉을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또다시 전관예우 논란이 일고 있다.
“로펌으로 달려간 판사들, 연봉 최고 27억 받아”
열린우리당 김동철 의원은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울지법 국정감사에서 퇴직 법관들이 대형로펌으로 진출해 최고 연봉 27억원에서 최하 6억원까지 받고 있다는 내용의 '로펌진출 판사 보수월액 현황'을 공개했다.
현황 자료에 따르면 퇴임 후 국내 대형로펌 중 한 곳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L 전직 대법관의 경우 지난 2002년 7월 한 달 보수가 무려 2억2천6백52만원에 달했다. 김 의원은 “이는 연봉으로 따지면 27억원이나 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대형로펌에서 활동하고 있는 B 전 대법관의 경우도 월 8천4만원, 연봉으로 따지면 약 10억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전 서울중앙지법원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월 6천9백11만원, 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P 변호사는 월 6천4백31만원, 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L판사의 한 달 보수는 5천3백만원에 이르렀다.
김 의원은 “대법관 출신의 경우 많게는 월 2억여원에서 통상 8천여만원까지, 법원장급은 월 7천여만원, 부장판사급은 월 6천5백여만, 일반판사 출신은 월 5천여만원 수준을 받고 있다”며 전관예우의 심각한 실태를 폭로했다.
16일 서울고법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고위 법관출신들의 전관예우 문제를 집중 거론해 일선 법원장들을 당혹케했다. ⓒ김동현 기자
90년이후 퇴직 대법관 중 변호사 개업 안한 이는 단 2명
전관예우 탓인지 퇴임후 변호사가 되는 법관은 대법관 등 고위직일수록 심했다.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지난 1990년 이후 퇴임한 31명의 대법관 중 (재임중 사망 1명 제외)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은 대법관은 단 2명에 불과하다”며 “32명 퇴임 대법관 중 15명은 김&장, 세종, 태평양, 화우, 광장, 율촌 등에 소속돼 있다”며 퇴직 대법관들의 ‘메이저 로펌 러시’를 질타했다.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은 전직 대법관은 2004년 8월 퇴임한 조무제 동아대 석좌교수와 지난해 11월 퇴임한 배기원 영남대 석좌교수 등 2명 뿐이다.
대법원장 후보에도 올랐던 조무제 전 대법관은 지난 1993년 첫 공직자 재산공개 당시 꼴찌를 차지했으며 1998년 대법관 취임 때도 재산신고액이 7천만원에 불과해 청렴한 판사의 전형으로 꼽혔다. 그는 또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재판수당을 직원들 소주값으로 사용하는 등 넉넉함을 잃지 않았으며, 대법관에서 물러난 뒤에도 변호사 사무실을 내지 않고 모교인 동아대 석좌교수로 활동해 '제2의 가인'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배기원 전 대법원도 딸각발이 법조인으로 유명하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 주로 대법원 사건 맡아
이들 퇴임 대법관은 자신이 근무했던 대법원의 사건을 주로 맡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 의원이 지난 1990년 이후 퇴임한 대법관 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퇴임 대법관들이 수임한 사건의 평균 63.2%는 대법원 사건이었다.
특히 한 대형로펌에 소속돼 있는 S 전 대법관의 경우 자신이 맡은 사건의 92.7%가 대법원 사건이었다. 이밖에도 개인사무실을 개업한 L 전 대법관 역시 자신이 수임한 사건의 94.3%는 대법원 사건이었다.
전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의 위력은 대법원의 심리불속행기각율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심리불속행기각이란, 형사사건을 제외한 민사ㆍ가사ㆍ특허 사건의 원심판결이 상고심을 제기할 수 있는 6가지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대법원이 본안 심리 이전에 상고를 기각할 수 있도록 한 처분을 뜻한다.
임 의원은 “대법원에 올라오는 사건 중 40% 가량이 이같은 심리불속행기각으로 걸러지고 있는데 반해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심리불속행 기각율은 평균 6.6%에 불과하다”고 밝혀,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임 의원은 “이용훈 현 대법원장(3%), 안용득 전 대법관(4.6%), 천경송 전 대법관(5.3%)의 심리불속행 기각율이 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 법관들도 ‘선배’ 따라 일찍 법원 떠나 ‘로펌’으로
대형로펌행은 일반 판사들의 경우도 오십보백보로 나타났다. 열린우리당 김동철 의원은 지난 2000년부터 올 해 7월 말까지 7년동안의 법관퇴직 현황을 공개했다.
김 의원 자료에 따르면 매년 80~90명 정도가 법원을 떠나고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법관 수가 2천명선임을 감안할 때 연간 4%가 넘는 수치로 일반직 공무원 퇴직율 3%보다도 높은 수치다.
김 의원은 “퇴직자 중 임기만료나 정년퇴직은 5~10% 정도에 불과하고 스스로 물러나는 의원면직이 70%를 넘어서고 있다”며 “일반직 공무원 의원면직 비율 1.1%에 비하면 큰 차이”라고 지적했다.
법관들의 퇴직 후 행보는 단연 ‘변호사 개업’이다. 지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간 퇴직한 법관을 대상으로 참여연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퇴직법관의 95.6%가 개업을 했다. 이는 1990년 이후 퇴임 대법관 31명중(재임중 사망 1명 제외) 29명, 93.5%가 변호사로 변신한 수치와 엇비슷하다.
“고위법관들 도대체 뭐가 부족하기에...”
김동철 의원은 이 날 국감에서 수도권 일대 12개 지ㆍ고법원장을 상대로 “법관으로 20년 정도 근무를 했을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경제적으로도 크게 부족할 것이 없다”며 “지방법원장급으로 연봉 8천여만원에 주택은 물론 그동안 축적해 놓은 재산도 있을 것 아니냐”고 쓴소리를 했다.
김 의원은 “정년퇴직했을 경우에도 연금 3~4백만원(최고근속 33년 기준, 대법관 3백95만원ㆍ부장판사 3백57만원)에 자녀교육 다 시켰겠다, 들어갈 돈도 별로 없기 때문에 품위를 유지하며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재력으로는 충분하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그런데 무엇 때문에 많은 법관들이 젊은 나이에 옷을 벗는가”라며 “물론 연공서열 관행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바로 돈의 유혹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 10년 정도 있다 나가면 1~2년 사이에 평생 먹고 살 만큼을 번다는데 유혹이 없을 수가 있겠냐”고 법관들의 행태를 비난, 참석한 법관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