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X파일' 보도로 불구속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문화방송(MBC) 이상호 기자가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이 기자 본인은 물론 언론단체 등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 8월 1심 판결 뒤집혀 대법원 판결 주목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김용호)는 23일 '안기부 X파일'을 보도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MBC 이상호 기자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깨고, 징역6월의 유죄를 인정하되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자격정지 1년을 명했다.
재판부는 이날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이 사건처럼 국민과 국민 사이의 기본권이 충돌하는 경우 헌법 정신과 법리에 따라야 한다“며 ”이씨의 보도 행위는 중대한 공익상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이어서 사회 상규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통신비밀보호법이 특별히 위법성 조각 조항을 두지 않고 침묵하는 이유는 개인을 발가벗겨 수치를 드러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통비법은 엄격한 ‘법의 울타리’를 쳐주고 있다. 이 울타리 안에서 때로 부끄럽고 추잡한 대화가 오갈지도 모른다”며 “그러나 쉽게 위법성을 조각해 이 울타리를 열어놓는다면 권력은 울타리를 넘어 ‘독과’(毒果)를 따 타인의 비밀을 쉽게 알아내려는 유혹에 빠질 것이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법원은 도청 테이프 보도와 관련해 언론의 모든 보도행위에 유죄를 선고하는 것"이라며 ”보도 행위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고 판시했다.
또 재판부는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에 대해서는 검사와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 원심대로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이 기자는 작년 1월 재미교포 박인회씨로부터 안기부 도청테이프 1개와 녹취보고서 3건을 입수, 불법도청 결과물인 것을 알고도 같은해 7월 이를 보도한 혐의로, 김 편집장은 자체 입수한 X파일 테이프 녹취록을 지난해 9월호 <월간조선>에 공개한 혐의로 지난해 12월14일 각각 불구속 기소됐다.
유죄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고 강력반발하고 있는 이상호 MBC기자. ⓒ김동현 기자
이상호 "판결 수용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이 기자는 “공익을 위한 언론 보도를 인정하지 않은 이번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해 공익을 위한 언론의 책무를 인정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언론유관단체들도 이번 판결이 언론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한 것으로 수용할 수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어 논란 확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지난 8월11일 열린 1심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김득환 부장판사)는 23일 이상호 기자에 대해 “해당 보도가 공익을 위한 것이고 국민의 관심사를 충족하려는 언론의 책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었다.
당시 재판부는 “이 사건 보도행위의 경우 공적인 관심사에 대해 보도해야 할 중대한 공익상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보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상당성, 보호법익과 침해이익 사이의 균형 등을 헌법의 취지에 비춰 판단해 볼 때 위법성이 조각된다"며 “통신비밀보호법 자체는 아무런 위법성 조각사유도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통신의 비밀을 침해하되 언론의 기능상 보도가 불가피하다고 보이는 등 두 기본권이 상충되는 경우 통신비밀침해 행위에도 형법상의 정당행위 조항 등 일반적인 위법성 조각사유를 적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