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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X파일 보도한 한국언론 모두 유죄”

"8년전 일 긴급히 보도할 이유없다", 이상호 "보도는 정당했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김용호)는 23일 '안기부 X파일'을 보도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MBC 이상호 기자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깨고, 징역6월의 유죄를 인정하되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자격정지 1년을 명했다.

특히 재판부는 이 날 판결에서 “이상호 기자와 유사한 도청 테이프 보도를 한 대한민국 언론 모두에 법원은 유죄를 선고한다”며 X-파일을 보도한 ‘대한민국 전체 언론’에 유죄를 선고했다. 또 재판부는 ‘X-파일’에 등장하는 당사자들의 인격권 침해 부분 역시 인정했다.

재판부, 정당방위 요건에 견주어 판결 근거 들어

일단 재판부는 “이 사건처럼 국민과 국민 사이의 기본권이 충돌하는 경우 헌법 정신과 법리에 따라야 한다”며 “피고의(이상호 기자) 보도 행위는 ‘중대한 공익상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이어서 사회 상규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못박았다.

재판부는 특히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행위도 ‘사회상규에 위반되지 않는 행위, 즉 정당행위로 취급되면 벌하지 않는다’는 형법 총칙을 따를 수도 있다”며 형법상 정당방위 요건에 견주어 X-파일 보도의 ‘적법성’을 따졌다.

재판부는 대법원이 이제까지 인정하는 정당방위 요건으로 ▲목적의 정당성 ▲행위의 상당성 ▲법익의 균형성 ▲긴급성 ▲보충성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먼저 재판부는 ‘행위의 상당성’ 부분과 관련 “보도에서 X파일에 등장하는 당사자 간의 돈 거래 액수를 구체적으로 보도한 점, 또 당사자들의 실명을 그대로 보도한 점 등은 개인의 인격권을 상당히 침해하는 것으로 용인될 만한 ‘수단의 상당성’을 일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는 ‘긴급성’과 관련해 “안기부 X-파일 내용이 국가의 불법행위의 산물이며, 재벌과 언론사주가 이미 8년 전 대선자금을 상의하고 일부는 실제로 집행됐다는 의심이 들기 는 때문에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 “이미 8년 전 일, 긴급히 보도할 이유없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그러나 대화 내용을 국가 안전보장, 사회질서 수호 등을 위해 부득이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대선이 끝난지 8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보도 당시의 국정운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만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또 그 테이프 대화내용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한 사람은 이미 대통령 임기를 마쳤고, 또 다른 사람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정가에서 물러난 사람”이라며 보도의 긴급성이 없음을 시사했다.

재판부는 보충성에 있어서도 “이상호 기자를 비롯한 MBC 기자들은 이미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공개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그 보충성에 있어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이같은 정당방위 요건을 들어 법원은 “이상호 기자가 특종을 해야겠다는 개인의 공명심이 아닌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겠다는 사명감에서 이 보도를 했다는 동기의 정당성은 인정될 수도 있겠으나, 위 부분들을 살펴보면 그것이 판결의 유무죄를 따지는 데는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양형의 판단 기준일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재판부, “X-파일 보도한 대한민국 언론 모두 유죄”

특히 재판부는 통신비밀보호법에 그 어떤 조각 사유를 두지 않는 것과 관련해서도 그 입법 취지가 옳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재판부는 “통신비밀보호법이 특별히 위법성 조각 조항을 두지 않는 이유는 개인을 발가벗겨 그 치부를 드러내지 않게 하려는 것으로 엄격한 ‘법의 울타리’를 쳐주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이 울타리 안에서는 때로는 X-파일 내용보다 더한 부끄럽고 추잡한 대화가 오갈지도 모르지만 쉽게 그 위법성을 조각해 울타리를 열어놓는다면 권력은 울타리를 넘어 ‘독과’(毒果)를 따먹는 타인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유혹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통신비밀보호의 울타리를 엄하게 지키기 위해, 이상호 기자와 그 소속사인 MBC를 비롯해 도청 테이프 보도와 관련해 이와 유사한 보도를 한 대한민국 언론 모두에 법원은 유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이 있다고 보여지고 또 피고인 이상호 개인이 아닌 MBC 보도국의 의사결정을 거쳐 보도가 이루어졌으며, 또 다른 언론매체들도 MBC 보도 이후 실명을 공개한 데다, 유독 이 기자와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만 기소된 점 등을 감안해 형법 59조 1항에 따라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이상호 기자, “이 사건은 자본에 의한 국가권력 찬탈 행위, 보도는 정당했다”

반면 MBC 이상호 기자는 이 날 공판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X파일 보도는 정당했다”며 “보도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대법원에 상고할 입장”임을 명확히했다.

이 기자는 “법원이 매번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내놔 당황스럽다”며 “기왕에 검찰이 기소한 그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이 사건은 삼성이 자본을 이용해 국권을 찬탈하려는 시도였다”며 “끝까지 대법원에 상고해 보도의 정당성을 찾겠다”고 말했다.

그는 “1심이 어렵지만 양식있는 판단을 했다”며 “2심에서도 이것이 유지될 줄 알았으나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특히 이 날 판결과 관련 “법원이 너무 법 논리에만 치중해 판단한 것 같다”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이 기자는 “법원의 판결 자체는 존중한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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