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도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에 대해 대선후보 자격이 충분하다며 결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했다. 반면에 고건 전총리에 대해선 신랄한 비판을 가해, 김 의장이 통합신당 창당과 관련, 고 전총리가 아닌 정 전총장과의 연대를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낳고 있다.
김근태 "정운찬은 자격 있어. 결단 내려줬으면"
김 의장은 19일 <조선일보>와의 동행 인터뷰에서 범여권에서 대선후보로 거명되고 있는 정 전총장에 대해 "좋은 사람이고 역량이 있으며 (후보가 될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김 의장은 이어 "정 전총장은 고교 후배로 잘 알고 친한데, 한나라당 노선과는 확실히 다르다"며 "정 전총장이 결단을 내려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 의장은 정 전총장의 경기고-서울대 상대 1년 선배다.
정운찬 전 총장(뒷줄 왼쪽 첫번째)과 김근태 의장(가운데 왼쪽 두번째)이 1964년 서울대 의대 외국인교수 숙소에서 캐나다 출신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1888~1970.한국명 석호필) 박사(앞줄 가운데)와 함께 한 모습. ⓒ연합뉴스
김근태 "고건은 통찰력과 예견력이 없는 사람"
김 의장은 그러나 고건 전총리에 대해선 "고 전총리는 햇볕-포용정책에 대해 입장이 모호하다"며 "고 전총리의 가을햇볕정책은 안 맞는 얘기로, 고 전총리와 함께하는 것에 대해 논쟁이 불가피하다"고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김의장은 "가을햇볕정책을 펴서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을 중단하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했다면, 6자회담 재개로 우스운 사람이 됐을 것"이라며 "고 전총리는 그것을 하려고 한 것인데, 통찰력과 예견력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질타했다.
김 의장은 그러면서도 "고 전총리는 반(反)한나라 연대의 유력한 주체 중 한명이며, 현정부의 초대총리로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열린당에서 서서히 확산되는 '정운찬 대안론'
김근태 의장의 이같은 '정운찬 격찬-고건 비판'은 그동안 통합신당 논의를 주도해온 김 의장의 속내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해석을 당 안팎에서 낳고 있다.
친노진영 등 당사수파는 그동안 김 의장이 주장하는 통합신당을 '고건-민주당과의 합당'으로 규정한 뒤, 이를 '도로 민주당'이라고 맹비난해왔다. 김 의장은 그러나 이날 고 전총리를 공개비판함으로써 이같은 비난에 반격을 가한 것. 김 의장은 대신 우회적으로 정운찬 전 총장을 연대 대안으로 제시했다.
당 일각에서는 김 의장의 이번 발언이 최근 몇달간 노무현 대통령과 뚜렷한 대립각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자신의 밑바닥 지지율이 움직이지 않는 데 대한 '결단'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열린당 신당추진파 중에서 '정운찬 대안론'을 제기한 것은 김 의장이 처음은 아니다. 열린당 잠룡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천정배 전 법무장관도 최근 사석에서 "참여정권의 실정으로 열린우리당 후보들도 모두 상처를 입은 상황"이라며 "정운찬 전총장 같은 분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동영 전 의장은 아직까지 대권도전 의지를 꺾지 않고 있으나, 다른 후보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대안'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양상인 셈.
이에 앞서 민주당의 김효석 원내대표, 신중식 의원 등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 전총장을 유력후보로 거명해, 열린당과 민주당에서 '정운찬 대안론'이 꿈틀대기 시작한 양상이다.
정운찬 "김근태 2년동안 만난 적 없어"
이같은 열린-민주당의 '정운찬 대안론'은 정 전총장과 교감을 거쳐 나온 것은 아니다.
정 전총장은 자신이 김근태 의장 등과 최근 접촉을 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김근태 선배와는 2년전 약속을 해 만난 이래 공식석상이 아닌 사석에서 만난 적이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지난해 6월16일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 GOP 전망대에서 육군과 서울대 주최로 열린 `GOP안보 토론회'에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김근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정운찬 당시 서울대 총장. ⓒ연합뉴스
또한 열린우리당과 관계도 그다지 좋지 못하다. 지난해 7월 정 총장이 서울대총장 재임시절 통합논술을 도입하자 노무현 대통령을 필두로 열린우리당이 총비난 공세를 편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정 총장 공세의 선두에 선 의원 중 한명인 정봉주 의원은 현재 '김근태계'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소한 '교육정책'에 관한 한 정 전총장은 '3불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열린우리당과 대립관계에 있는 셈.
정 전총장의 한 정치권 지인은 열린-민주당의 잇딴 러브콜에 대해 "다음 대선이 정당보다는 인물 중심의 선거가 될 게 확실하니 정운찬을 찾기 시작한 것 같다"며 "그러나 '열린우리당 후보'나 '범여권 후보' 같은 타이틀이 정운찬 뒤에 따라 붙으면 백전백패"라고 말했다. 그만큼 정부여권에 대한 국민여론이 험악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지인은 "만에 하나 정운찬이 정치를 하게 된다면, '새 술은 새 푸대에'라는 원칙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