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해고 가장, 폐가에서 추위 피하다 질식사
해고 사실 숨기며 외고 합격한 딸의 학비 걱정
31일 <부산일보>에 따르면, 28일 오후 7시께 부산 동래구 온천동 한 2층 폐가에서 불이 나 방 안에 있던 정 모(41) 씨가 숨졌다. 인근 주민이 불이 난 것을 목격하고 119에 신고했으며, 소방관들이 진화 과정에서 숨진 정 씨를 발견했다.
정 씨의 시신은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탔으나, 엎드린 시신 안쪽 호주머니에서 실업급여 신청서가 있어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은 폐가에서 지내던 정 씨가 갑자기 닥친 강추위를 달래려 불을 피웠다가 질식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가 난 집은 재개발지역에 포함돼 10년 이상 폐가로 방치된 곳이다.
경찰 조사 결과, 정 씨는 경남 고성군 S조선소의 하청업체에 다니다가 지난 1일 일감 부족으로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는 이 업체에서 11개월 정도 근무했는데, 회사 재직시에는 회사 기숙사에서 머물다가 2~3주마다 부산 집에 왔다.
경찰은 정 씨가 해고 후 갈 곳이 없어 자기 집 근처 폐가에서 머문 것으로 보고 있다. 폐가와 집까지 거리는 500m 정도였다.
실직 후 정 씨는 고용노동부의 실업급여도 신청했다. 경찰은 정 씨가 최근 1주일분 실업급여 32만원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그의 부인과 외동딸은 가장이 해고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정 씨가 지난 14일 집에 온 뒤 이틀 만에 회사에 간다며 집을 나선 게 마지막이 될 줄도 까마득히 몰랐다.
가족들은 경찰에서 "평소 일요일에 회사로 돌아가는데, 월요일인 지난 16일 출발하는 게 이상하긴 했다. 아빠가 지난 25일 크리스마스 때 마지막으로 통화해 안부를 물었는데, 그 뒤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고 밝혔다.
정 씨의 직장 동료와 지인들을 조사한 경찰은 정 씨가 최근 돈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한 사실도 확인했다. 정 씨가 공부를 잘 하는 딸이 최근 외고에 합격한 뒤 실직을 당해 학비 고민을 많이 한 것으로 경찰은 짐작했다. 그의 부인은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생활비를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 경위를 밝히기 위해 정 씨 시신을 부검하고, 정밀 현장 감식을 벌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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