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법안 가운데 은행법 개정안의 경우 국회를 통과했으나,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여권의 자중지란으로 부결됨으로써 금산분리 관련법이 반쪽만 통과되는 희대의 블랙코미디가 발생했다.

국회는 30일 밤 본회의를 열어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한 표결을 벌인 결과, 원안과 수정안 모두가 법안 통과에 필요한 과반 확보에 실패해 부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표결에서 수정안의 경우 재석의원 202명 중 찬성 92명, 반대 64명, 기권 46명으로, 원안은 재석의원 221명 중 찬성 103명, 반대 81명, 기권 37명으로 각각 부결됐다.

그러나 앞서 기업의 시중은행 지분소유 한도를 현행 4%에서 9%로, 산업자본의 사모펀드투자회사(PEF) 출자 한도를 10%에서 18%로 각각 높이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은 재석의원의 과반 찬성으로 의결돼 금산분리는 사실상 '반쪽 기형아' 신세가 됐다.

여야 원내대표부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과 사모펀드 지분을 각각 낮추는 금융지주회사법 수정안을 제출키로 합의하면서 가까스로 본회의에 회부됐다.

그러나 김영선 정무위원장이 본회의 반대토론에서 "소관 상임위서 이미 합의한 법안에 대해 수정안을 낸 것은 여야 원내대표가 마지막 공적을 내기 위해 야합한 것"이라며 "이는 상임위 중심주의를 여야 원내대표가 짓밟은 것"이라며 큰 목소리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맹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본회의 직전에도 홍 원내대표를 만나 "이렇게 상임위의 결정을 무시해선 안된다"며 강력 반발, 설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정무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몇번에 걸쳐 심도있게 토론했고 여야정 권력에 기대는 표결을 한다면 여러분의 권능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수정안에 반대하고 원안에 찬성해주길 바란다"며 수정안 반대 투표를 호소했다.

이후 투표에 들어간 결과 수정안과 원안 잇따라 모두 부결처리됐다. 한나라당의 반란표가 부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이로써 은행법 개정안 통과로 산업자본의 단독 개별은행 지분소유 한도가 높아졌으나,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부결로 인해 금융지주회사 형태의 은행에 대해서는 지분 소유가 현행과 같아지는 황당한 사태가 발생하게 됐다. 또 은행을 제외한 보험.증권지주회사가 제조업을 자회사로 두는 것도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부결로 자동 보류됐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본회의 산회 뒤 기자들과 만나 "수정안을 야당에서 내달라고 해서 냈는데 반대해버렸다"면서 "정치도의상 이럴 수가 있느냐"며 야당에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이에 대해 민주당 서갑원 수석 부대표는 "김영선 위원장이 반대토론을 해서 자중지란이 일어난 것을 민주당에 덮어씌우기를 하고 있다"면서 "당초 우리는 이 법안에 대한 협상을 하면서 원안이든 수정안이든 모두 반대 입장이었다"고 반박했다.

한나라당은 이처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부결됨에 따라 오는 6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이를 통과시킨다는 입장이나, 당내 분란으로 반쪽짜리 법안만 통과시킴으로써 한나라당의 혼란상을 또다시 노정시키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