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선장 "엉덩이 많이 아파 뛰쳐나왔다"
첫 구조된 후 신분 속이기까지
21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사고 당일인 16일 오후 7시 기준으로 작성된 ‘1차 구조자 명단’을 세월호 승선 선원 명부와 대조한 결과 이준석 선장과 승무원 8명의 신분이 ‘선원’이 아닌 ‘일반인’ 혹은 ‘미상’으로 기재돼 있었다.
구조된 세월호 승무원 18명 중 이 명단에 포함된 것은 13명이었지만 이 중 1등 기관사 손모 씨(58) 등 5명만이 ‘선원’으로 분류돼 있었다. 나머지 8명 중 선장 이 씨와 기관장 박모 씨(48) 등 3명은 ‘일반인’으로 기록돼 있고, 조타수 오모 씨(58) 등 5명은 직업란이 비어 있다.
사고 당시 선박 운항을 지휘했던 3등 항해사 박모 씨(26·여·구속) 등 항해사와 조기수 5명은 구조됐지만 이름이 구조 명단에는 아예 누락돼 있었다.
또한 검경합동수사본부 등에 따르면 선내 지휘 의무를 어기고 구조선에 몸을 실은 이유에 대해 이 선장은 “나도 (엉덩이가) 많이 아파서 뛰쳐나왔다. 때마침 구조선이 눈앞에 도착했고 구조대원들이 ‘배에 타라’고 해서 그 말대로 했을 뿐이지 승객들을 내팽개친 것은 아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침몰 당시 선박 항해를 맡았던 여성 3등 항해사 박 씨는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했고, 건장한 남성도 (선실 내에서) 간신히 버텼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직후 브리지에서 선장과 함께 있다가 탈출한 조타수 오 씨가 자신의 ‘구조 활약기’를 조서에 포함시켜 달라며 경찰 조서 서명을 거부하는 소동도 있었다. 해경에 따르면 오 씨는 18일 오후 1시부터 1시간 30분가량 목포한국병원 병실에서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은 뒤 ‘수사 과정에서 이의가 있었던 부분’ 칸에 “나는 탈출 후 구조선을 타고 세월호 주변을 돌면서 구조작업을 폈고 해경 대신 직접 배 유리창을 깨 사람을 구했다”는 내용의 글을 빽빽하게 적기 시작했다. 오 씨의 글이 조서 뒷면까지 이어지자 경찰이 “수사와 관련 없는 내용은 적지 말라”고 제지하고 서명을 하라고 촉구하자 오 씨는 지장 날인을 거부했다. 결국 오 씨는 19일 해경에 소환돼 조서를 새로 작성한 뒤에야 지장을 찍었다고 <동아>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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