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여 안산고교생들 "잊지 말아주세요"
<현장> 추모행진-촛불문화제 "무능 정부-언론 기억한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친구들을 추모하기 위해 안산지역 고등학생들이 9일 거리로 나섰다.
안산지역 24개 고등학교 학생들은 9일 오후 안산 고잔동 문화광장에서 친구들을 추모하고 정부당국의 무능에 항의하는 침묵행진과 촛물문화제를 열었다. 학생들이 주관한 촛불문화제는 이번이 처음이다.
오후 6시 40분께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20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해 저마다 '잊지 않을께',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적힌 노란 종이팻말을 들고 고잔동 문화광장까지 2km 거리를 침묵행진했다.
이어 8시부터는 '잊지 말아주세요'라는 주제로 촛불문화제가 시작됐다. 200여명 남짓이던 학생들은 어느새 2천여명(경찰 추산 1천500명) 가까이로 늘어나 문화광장을 가득 메웠다.
학생들은 자유발언을 통해 먼저 떠난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과 잊지 말아달라는 호소, 그리고 사태를 키운 정부와 혼란을 가중시킨 언론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다. 단상에 오른 학생들이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리며 발언을 이어갈 때마다 지켜보던 학생들과 어른들은 눈물을 흘렸다.
경안고 우승민 학생은 "촛불집회를 왜곡하는 일부 언론들에게 부탁한다. 우리들이 모인 취지는 단원고 친구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가슴 속 깊이 추모하기 위해서다"라며 "절대로 언론과 사회가 우리의 이런 마음을 왜곡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정치적 이념도 세대간 갈등도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부디 이런 순수한 마음만은 진실되게 취재해달라"고 호소했다.
백찬영 학생은 "학생들의 순수한 취지를 어른들이 왜곡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며 "이럴수록 학업에 집중하라는 말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학교가 단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곳인가. 남탓하고 책임전가하는 어른들을 보며 우린 무엇을 배워야 하나. 친구에 대한 배려보다 경쟁에서 위에 있어야만 하나"라고 울분을 토했다.
한 남학생은 "사고 직후 무능했던 해경, 정부, 언론 모두 기억한다. 그들은 우릴 지켜준다고 했지만 지켜주지 않았다. 한달여가 지났지만 이 사회의 무능과 책임 회피가 지금을 만들었다"며 "지난 시간 흘린 눈물로, 슬픔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친구들을 지키지 못한 지금의 대한민국을 미래의 대한민국은 잊지 않을 거다. 친구들의 죽음을 마음에 새겨 신뢰받는 사회, 책임지는 사회,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유가족을 헐뜯고 모욕하며 정치적 색채를 입히는 행위를 중단하고 그분들의 슬픔에 공감해달라. 인간으로서 예의를 지켜달라. 유가족분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귀 기울이며 함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성안고 송수민 학생은 희생자 부모님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며칠전 합동분향소에 갔을 때 부모님들께서 유인물에 쓰신 '무능한 부모에게 힘이 되어달라'는 말을 잊지 못한다"며 "이제 더 이상 자책하지 마셨으면 한다. 아이들은 부모님들의 아이로 태어나 살아온 것만으로 행복했을 거다. 우리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 이런 가슴 아픈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어른이 되겠다"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임정은 학생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며 설레어 들뜬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그렇게 기다리더니 4월 16일이 잊을수 없는 날이 돼버렸다"며 "친구들을 기디라던 저희 곁으로 돌려줄 거라고 어른들을 믿었다. 저희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해도 좋으니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바랐다. 어른들이 더 노력했었더라면 우리 눈물이 조금은 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제 월드컵도 열리고 아시안게임도 열린다. 벌써 사람들 기억속에서 서서히 잊혀져가는데 아예 잊혀질까봐 두렵다"고 절규했다.
한 여학생은 고인이 된 친구들에게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나온 자리도 아니고, 우린 매우 어려 사회에 나가기 부족한 나이다. 그렇지만 이번 사고가 단순한 배사고가 아닌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겠다는 어른들이 약속을 어겨서 생긴 사고라는 건 안다"며 "언론이 너희를 잊었다고 모두가 너희를 잊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끝까지 너희들을 기억해서 또 다시 모든 국민들이 공범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촛불문화제는 학생들의 자유발언에 이어 추모의 메시지를 담은 카드섹션, 숨진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어 광장 주변에 설치된 줄에 거는 행사를 끝으로 1시간여만에 마무리됐다.
한편 안산지역 외에 이날 서울 도심 곳곳에서도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 시민촛불 원탁회의가 오후 7시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촛불집회를 가진 뒤 인사동까지 침묵행진을 벌였고, 연세대 총학생회는 같은 시간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로삼거리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주말인 오는 10일에는 원탁회의가 서울 청계광장에서 개최하는 10만 촛불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에 앞서 오후 3시 30분에는 청소년단체 '희망'이 주관하는 추모행사가, 오후 5시에는 5대 종단 평신도 시국행동이 청계광장에서 연합 추모기도회를 개최한다.
안산에서도 이날 오후 3시부터 안산시민사회연대가 주관하는 '노란리본 잇기' 행사와 촛불집회가 각각 합동분향소가 있는 화랑유원지와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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