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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다면 거리로 나서는 것이 정치다”

<현장> 민노당 9명 의원의 5일간의 노숙 단식농성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오늘로 단식 농성을 마무리합니다. 투쟁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투쟁의 장으로 나서려고 합니다.”

민주노동당 의원 9명이 5일간 곡기를 끊고 아스팔트 위에서 진행해 온 노숙 단식농성을 19일 오후 마무리했다.

일반인들에게 민노당 의원들의 장외투쟁은 낯설지 않다. 한미FTA가 아니더라도 노동자와 장애인, 그리고 영세상인과 빈민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현장에는 반드시 소속 의원 한 두명이 모습을 드러냈었다.

민노당, 창당 이래 첫 의원단 장외투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번 민노당 의원들의 노숙 단식농성이 창당 이래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과거 권영길 원내대표와 강기갑 의원이 20일 넘는 단식농성을 벌였지만 모두 원내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그만큼 이번 장외투쟁은 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로서는 이례적이며 극단적인 정치적 수단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민노당의 이런 절박함은 주초 정치권에 날아든 고건 전 국무총리의 전격사퇴로 언론과 세인의 관심을 얻지 못했다.

협상장은 제한된 언론의 반쪽 취재만을 허용하고 전문가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전문적인 지식이 오고가는 상황에서 민노당 의원들은 고립된 섬이었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6차 협상이 한창인 17일 오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앞. 20여대의 경찰버스가 차벽을 둘러친 틈 사이로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있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농성 이틀차인 16일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최병성 기자


그들은 왜 추운 거리로 나섰나

15일 신라호텔 로비로 들어가지 못하고 경찰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 끝에 그대로 눌러앉은 의원들은 이중 삼중 껴입은 방한복과 모포, 중앙당에서 지원한 소형 히터, 성동구 위원회에서 보낸 소형 발전기에 의지해 5일을 버텼다.

농성장 건너편 당초 천막을 치기로 했던 자리에는 대신 ‘노무현 대통령, 당신의 고집이 서민을 울립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필요하다면 거리로 나서는 것도 정치요, 국회의원의 책무입니다”

협상장에서 만난 천영세 의원은 ‘민노당 의원들의 장외투쟁을 바라보는 일부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천 의원은 “한미FTA 협상은 우려했던 대로 일방적이고 졸속적으로 진행되는데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도 이 사실들을 외면해왔다”며 “원내에서 일상적으로 정치를 해야 하는 우리들이 나온 이유는 단 하나, 체결 이후 벌어질 사태의 엄중함을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더 알아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천 의원은 “당장 FTA가 우리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더라도 얼마 안지나 내 아이들의 미래와 일상을 송두리째 넘겨버릴 수 있다”며 “민노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미FTA는 우리에게 미래를 주지 않는다”

“사회적 지출은 제어하고 개인의 지출에 의존하는 사회양극화의 제도적 고착이 FTA의 본질이다”

권영길 의원은 조목조목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의 문제점을 짚었다. 권 의원은 “지금 우리나라 정부와 국회는 협상과 야합을 분별할 줄 모르고 있다”며 쓴 소리를 이야기를 시작했다 .

권 의원은 또 “정부는 FTA=좋은 것, 우리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수십억원을 들여 광고를 하지만 가장 큰 수혜를 입는다는 자동차, 조선, 전자, 섬유에서 과연 미국을 상대로 어떤 이익을 얻는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자동차는 이미 관세가 2.5%에 불과하고 미국은 국내 조선업의 수입국이 아니며, 반도체는 이미 비관세 품목으로 어떤 실효성도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공공분야와 금융분야를 내주고 무역구제를 포기하는 것은 굴욕적 협상”이라고 말했다.

한미FTA 6차 협상 첫날인 15일, 신라호텔 앞에서 경찰의 기자회견 봉쇄에 항의하며 연좌농성을 벌이는 의원들.ⓒ최병성 기자


심상정 “FTA는 한국경제를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국민의 50% 이상이 FTA를 반대하고 있다. 시민사회가 끈질기게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 정도면 언론의 관심이 다른 곳에 머물렀다 해도 절반은 이긴 싸움이다. 원내에서였다면 이 정도 성과는 얻기 힘들었다”

심상정 의원은 거대 양당의 무관심 속에서 원외투쟁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심 의원은 “솔직히 나 또한 국회 FTA 특위 위원이지만 대선정국에 가려 누구도 진지하게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있다”며 “국정운영의 포부를 갖고 있는 대선주자들이나 정권을 잡겠다는 제1야당이 선거에만 눈이 멀었다”고 날을 세웠다.

심 의원은 또 “분명히 참여정부가 알아야 할 것은 FTA는 수단이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다양한 수단을 강구할 충분한 시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FTA만 매달린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회찬 “유신 방불케 하는 정부, FTA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국회”

“집회도 안된다, 광고도 안된다,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지원금도 끊는다, 국회의원들의 기자회견도 막는다. 정당성 잃은 과거 유신정권과 다른게 뭔가”

노회찬 의원은 중간 중간 입을 꽉 다물면서도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노 의원은 “지금 정부는 성공에 대한 확신보다는 이제 막바지까지 왔으니 그만두지 못한다는, 떠밀리는 심정으로 협상을 하고 있다”며 “성공에 대한 확신과 과정상의 정당성이 있다면 이렇게 모든 언로를 차단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나아가 노 의원은 “더 심각한 것은 입만 열면 사회양극화를 떠들면서 그것의 심화가 뻔한 FTA에 침묵하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라며 “정부야 칼을 뽑았다 쳐도 정치권은 뭘 얻기 위해 이러나. 약자의 희생위에 강자가 이익을 가져가는 사회를 바라는 것이냐”고 정치권을 질타했다.

강기갑 의원과 단병호 의원. 고무신과 등산화가 눈에 띈다.ⓒ최병성 기자


“민생 챙겨야 할 것도 많은데...”

일주일간 원외 투쟁에 집중하면서 여전히 각 상임위에 계류 중인 민생법안을 챙기지 못하는 아쉬움을 드러내는 의원들도 있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최순영 의원은 “정말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필요한 학생인권법, 장애인교육지원법 등이 교육위에서 논의가 멈췄다. 사학법은 다시 거대 양당이 개정을 말하고 있다”며 “3일 동안 배고픔과 추위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대선에 눈이 먼 정치인들이 이런 중요한 일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단병호 의원은 최근 잇달아 터지고 있는 노동현안에 목소리를 높였다. 단 의원은 특히 현대차 파업과 관련해 “노사문제는 겉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는 내재적이고 복합적인 부분이 있다”며 “언론들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시무식 폭력사태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췄다”고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단 의원은 또 “현대차 전 노조 위원장의 뇌물 수수는 내가 먼저 용납할 수 없는, 노조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고 지적하는 한편 “노동자에게 뇌물을 준 회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언론과 사회가 노사관계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의원단은 19일 오후 농성 정리 기자회견을 끝으로 다음주부터 원내활동을 재개한다. 의원들의 첫 일정은 노회찬 의원의 영세가맹점 수수료 인하운동 지역 발대식과 심상정 의원의 전교조 지역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강연이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노숙농성을 비아냥댔던 외부의 시선으로 볼때는 또 다시 장외투쟁인 셈이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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